[긴히지] BITE
Kiss me on the mouth and set me free
But please don't bite
뱀파이어 긴 X 인간 히지
어이, 해결사. 히지카타 토시로가 해결사 사무소의 문을 두드린 건 늦은 저녁이었다. 오후 10시가 훌쩍 넘은 시각. 1시간 전 쯤 신파치는 퇴근해 사무소에 없고 티비를 보던 카구라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긴토키가 자라고 등을 떠밀고도 2-30분은 남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남은 시간동안 긴토키는 점프를 느긋하게 다시 읽던가 손톱발톱을 정리하던가 무료하게 티비를 보고 있을 터였다. 방금 히지카타가 문을 두드리면서 평범했던 일상이 산산조각이 나긴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머리를 한번 긁어주고는 천천히 문앞에 가 문을 열어주었다. 늦은 시각에 해결사로 찾아오는 히지카타는 언제나 가벼운 유카타 차림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면 곧은 자세로 앞을 내다보고 있어 긴토키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오후까지만 해도 마주치기만 하면 도끼눈을 뜨던 양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빛의 속도로 눈을 피하더니 볼이 붉어지면서 머뭇거리는 것이다.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고 본능에 충실해지곤 했다. 그대로 히지카타의 뒤통수를 붙잡고 키스를 진득하게 해서 귀까지 물들게 하거나, 좀 더 괴롭히고 싶은 날에는 키스 후 빙긋 웃어주고는 집 안으로 안내하곤 했다. 그런날은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지나 신발을 벗고 해결사로 완전히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나름의 정당한 이유를 만들고 변명하곤 한다. 히지카타가 너무 섹시해서, 히지카타가 너무 귀여워서, 이유없이 안고 싶어, 어래, 뒤로 갈수록 말이 안되는 이유들 밖에 없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사실인걸. 머리를 마지막으로 긁어주고 소리나게 문을 닫으면서 뒤따라 들어가 긴토키를 기다리는 히지카타에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했다. 그래, 이게 마지막 만남까지 마치 짜여진 틀처럼 반복하던 행위였다. 히지카타는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고 긴토키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 여긴다고 횡설수설하며 이어갔었다. 그리고 지금, 오늘도 히지카타는 기다렸다. 긴토키의 얼굴과 하얀 머리가 가득 채워지는 것을. 사실 긴토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피하고 얼굴을 붉히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밖에서 마주칠때의 그 썩은 동태눈이 아니라,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욕망을 훤히 비추면서 타오르는데, 그 눈을 마주하면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고 히지카타는 결론을 내렸다. 긴토키의 눈이, 그 홍안이 너무 강렬해서 그래.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눈을 마주하고도 피하지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긴토키를 싫어해서가 아니였다. 눈이 달랐다. 욕망을 투명하게 비추는 눈동자가 아니라 평범하게 자신을 비추는, 보통의 눈동자였다. 말없이 서로를 마주하기를 몇분이, 아니 몇초가 지났을까. 히지카타는 눈하나 깜짝 안하는 긴토키의 눈동자에서 당황스러움을 읽어냈다. 시간도 적절하고, 평소처럼 유카타 입고 왔고, 똑같은 멘트로 인사했다. 긴토키의 페이스를 따라잡지 못해 같이 가만히 있으니 긴토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아무말 없이 길을 비켜줬다. 이 루트가 아닌데? 당황스러웠지만 더 이상 어색하게 서 있기는 싫어, 히지카타는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지나가자 숨을 흡, 하고 들이마셨다. 목욕, 하고 올껄.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히지카타는 자신이 어떻게 걸어가는지도 눈치채지 못한 채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어색하지 않았지? 평소와 같았지? 아니 해결사가 평소와 다른데 내가 평소처럼 있어야 하나? 팔다리가 같이 나갔으면 어쩌지? 입은 웃고 있나? 눈은? 아, 담배피고 싶다. 카구라가 담배냄새를 싫어해, 라는 어느날의 긴토키의 말에 히지카타는 그 다음날부터 카구라만 보면 담배를 끄거나, 해결사에 갈 때 담배를 놓고 갔다. 비번일때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찾다가, 유카타 안에는 더 이상 담배를 넣지 않는것을 깨닫고 편의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손이 달달 떨리는것을 숨기기 위해 허벅지 아래로 숨긴 히지카타는 어두어진 주변에 고개를 반짝 들었다.
"...해결사."
긴토키가 히지카타 바로 앞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조명을 가리고 있어 긴토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말이 없었다. 히지카타는 손떨림이 전혀 진정되지 않음에 입술을 한번 더 깨물고는, 긴토키의 말을 기다렸다. 히지카타는 말재주가 없었고 둘의 만남에도 대부분 긴토키가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선 것은 분명 할 이야기가 있기에 있는것이라고 생각해 빤히 긴토키를 쳐다봤다. 보이지 않는 눈을 마주치려고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히지카타,"
입을 연 긴토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낮았다. 원래도 충분히 낮은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일어나자마자 들을 수 있는 착 가라앉은 그런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지난번 만남에서 히지카타가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긴토키의 강한 팔뚝의 끌어앉음에 찰싹 때려 들을 수 있는 그 목소리로 히지카타를 불렀다. 그때의 여유로움과 애정이 없어진 채 다급함과 욕망만이 남은 채였으나 히지카타는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 미묘했고, 세세함을 알아차리기엔 히지카타는 섬세함이 부족했다.
"목말라."
여전히 얼굴을 보이지 않고 분위기를 다 잡은 긴토키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히지카타는 절로 바람빠지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평소처럼 능글거리게 너를 먹고싶어, 오늘밤은 재우지 않을거야 등 연애를 점프로만 배운 쑥맥을 팍팍 티내면서 유혹하는 멘트가 아니었다. 아니 호스트 알바에서는 능숙하더니, 정작 나한테는 이게 뭐야? 내심 로맨틱한 말이 분위기와 맞춰서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히지카타는 이 부분에서는 언제나 애인 점수에 1점밖에 주지 않았다. 너 얼굴은 좋으니까, 이 말을 들은 긴토키는 그날 내내 거울을 보면서 기억도 나지 않은 부모님께 얼굴을 이렇게 생겨먹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생각했었다.
"아, 물 갖다 줘?"
"…."
"아니, 너네 집인데 너가 마셔!"
"….어,"
"뭐?"
"...먹고 싶어…"
"하? 알겠어, 갖다 줄게. 잠시만."
말도 끝까지 하지 않고. 어디 아픈건 아닌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주방으로 익숙하게 들어간 히지카타는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물을 잔에 따라 거실로 다시 돌아갔다. 그 포즈 그대로 미동 없이 중얼거리던 긴토키에게 잔을 건내지만 받지 않는다. 의아함에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팔을 붙잡고 흔든다. 어이, 해결사!
"...안…"
"야, 알아듣게 똑바로 말해봐!"
"...미안,"
히지카타. 그말을 끝으로 히지카타의 양 팔을 붙잡고 긴토키의 얼굴이 드디어 히지카타의 눈동자 가득 채워졌다. 너무 느리다고,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 줄 알았다. 그 짧은 순간 동안, 히지카타는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느꼈다. 점점 가까워지는 긴토키의 얼굴,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안에서 조명의 빛을 반사해 번쩍이는 길고 뾰족한 송곳니. 동공이 확장되는것을 느끼며 갑자기 허전해진 오른손에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잔은 어느새 바닥과 마주하기 2초전이었고 파편고 잔을 가득 채웠던 물이 사방으로 튀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긴토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 눈은 이제 붉은색을 빛내며 자신을, 자신의 신체에 온 집중을 쏟아붓고 있었다. 해결사 눈이 이렇게 붉었나, 라는 의문은 목을 햝는 긴토키의 뜨거운 혀에 새카맣게 태워져 버렸다.
"히익-!"
혀와 접촉된 모든 피부가 화끈거리고 예민해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금단현상이 아니라, 흥분으로 달달 떨리는 손으로 긴토키의 옷을 잔뜩 주름지게 움켜쥐었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이 작은 행동을 무척 좋아했다. 다림질도 안하고 다음날 입고 나온 것에 괜히 의식한 히지카타가 긴토키에게 다림질 좀 하라고 핀잔을 주자, 볼을 붉히며 수줍게 웃는 긴토키는 '밤의 히지카타 애인' 긴토키였다. 거리였고, 낮이었고, 히지카타는 방패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히지카타의 흔적이야 해맑은 미소는 히지카타의 뇌에 깊게 박혔고, 그 다음의 정사가 끝나고 나서는 멍하니 긴토키의 옷을 바라보는 작은 행동을 습관으로 굳혔다. 옷이 심하게 구겨져 있으면 환하게 웃으며 비척비척 일어나 옷을 쓰다듬었고, 덜 구겨져 있다면 비척비척 걸어가 옷을 구겨버리곤 했다. 그 웃음을, 그 수줍음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히지카타의 여린 살을 파고들때, 히지카타의 손톱도 손바닥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픔때문인지, 처음하는 행동에 놀라 비집고 나온건지 채 생각도 못한채, 주먹을 스르르 풀면서, 히지카타의 눈 또한 감겨졌다. 마지막에, 긴토키의 눈물을 본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면서.
눈을 뜨고 붕붕 뜬 머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시간을 봤다. 해결사를 온지 이제 3시간이 흘렀다. 새벽 3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히지카타는 일그러진 얼굴로 제 옆에 정좌세로 앉아있는 긴토키를 발견했다. 자신이 하면 나쁜 입이라면서 아프지 않게 찰싹 때리던 긴토키였다. 비식 웃으면서 긴토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양 손으로 볼을 잡고 억지로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붉었고 괴로워보였다. 너가 한 짓이라고는 어깨 쪽 목을 햝고 문 것 밖에 없는데, 마치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구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히지카타는 자신이 왜 긴토키와 시선을 마주하려고 했는지 목적을 망각하고 가만히 긴토키의 양 볼을 잡은 자세를 유지했다. 방 안에 시계소리가 가득 차 흘러 넘치려고 할때, 긴토키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가라앉았고, 무거웠다.
"미안…"
"너가 왜 미안해?"
"그냥, 다… 자세히는 말 못해."
"괜찮아."
"어?"
"살면서 숨기고 싶은게 하나씩은 있을 거 아니야? 말하고 싶을 때 말해."
그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퍽이나 놀란 얼굴로 멍하니 히지카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볼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지자,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손을 잡고, 볼에서 떼었다. 멋쩍게 웃으면서, 금단현상인가봐, 라고 말하는 것이 퍽이나 귀여워서 한동안 손을 만지작 거렸다. 이 예쁜 손으로 담배를 손에 쥐고, 칼을 쥐고, 내 옷에 잔뜩 주름에 만들고, 목에 매달리고, 내 주니어도 움켜쥐, 어이쿠. 열이 화악 오르는 것에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눈과 마주치지 못했다. 아니아니 긴상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뻐근해지는 아랫도리에 더욱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긴토키를 모르는 듯 떨리는 손을 긴토키의 손에서 빼고는 일어나 나간다.
"히, 히지카타?"
"담배. 오늘은 이만 갈게."
"어, 어? 어.. 어…."
잔뜩 풀이 죽은 모습에 히지카타는 담배보다 더 중요한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배도 급하지만, 이건 필수로 챙겨야 하는 것이라,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담배도 많이 급한거라, 그렇게나 원했던 분위기라던지 무드라던지 그런것을 모두 생략하고, 입술이 잔뜩 메말랐음에도 적시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양 팔을 축 늘어뜨린 긴토키의 옷깃을 붙잡고 이번에는 히지카타가 입을 벌리고 긴토키의 눈동자에 가득 채워졌다. 목이 아니라 입술에 안착해 실컷 긴토키의 입술을 적시고는 만족한 듯 개운한 얼굴로 신발을 신는다. 번들거린 입술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히지카타만을 바라본다. 뻐끔뻐끔, 지금의 긴토키는 마치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입술만 벙긋거렸다.
"키스 빼먹었어"
"????"
"입에 키스해줘야지."
"어, 어어?????"
"하지만 다음에는 물지 마."
"히, 히, 히,"
"간다."
히지카타아! 겨우 나온 히지카타의 이름이지만, 이미 히지카타는 해결사의 문을 꼭꼭 닫고 긴토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르륵, 주저앉은 긴토키의 얼굴은 시선 하나에도 펑하니 터질 듯 새빨개져 있었다. 입안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히지카타의 피맛을 히지카타도 느꼈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그로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