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카구] 처음
오키카구 전력
[처음]
높은 터미널의 불빛은 새벽이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에도 여전히 환하게 에도를 비춘다. 아래로 보이는 반짝반짝한 불빛이 작은 전구들이 모여 서로 뽐내는 것 같아 사람들은 '늦게 자는 새만이 볼 수 있는 벌레'라고 우스갯소리로 말을 하곤 한다.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네. 카구라는 푸흐, 하고 웃으며 야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자상 30층의 별 네개짜리 호텔. 그곳의 스위트룸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그 누구보다 높이 나는 새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구분이 되지 않지만, 눈을 가늘게 뜨면서까지 카부키쵸 거리를 찾는다. 가장 화려하고 가장 눈에 띄는,
"뭐하냐?"
꾸물꾸물, 희고 폭신한 이불을 잔뜩 둘둘 말고서는 비척비척 걸어와 카구라의 머리에 턱을 꾹 누르면서 오키타 소고는 퉁명스럽게 말을 건넨다. 일부러 뒤를 돌아보게 하는 행동을 막기 위해 말고 있던 이불을 재빨리 폈다 카구라를 품안에 가둔 후 이불을 다시 둘둘 만다. 처음 만난 후로부터 몇년이나 지났음에도 차이나 걸은 여전히 소고에게 작고 한팔에 안기는 크기였다.
"저기, 카부키쵸다, 해."
"어딜봐서. 여기서는 터미널과 성밖에 구분이 안되거든.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려보지 그래?"
"말 참 이쁘게 한다, 해. 흥, 멍청이 치와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해. 아! 저기 긴쨩이랑 신파치가 걷는다, 해."
"보이지도 않으면서…"
촌스러운 외국인 말투는 완전히 입에 붙었고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디자인의 머리장식은 여전히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이상한 별명은 애칭이 되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또한 여전했다. 외형 말고는 전혀 바뀌지 않은 사랑스런 연인이다. 그렇기에 더욱 지금같은 시간에 연인의 머리에 자신 말고 외부인이 구석탱이라도 차지한다는 사실에 입이 부루퉁하게 내밀어진다. 지금은, 온전히 나만을 바라봐 줘. 답지 않은 애교로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거나 머리에 얼굴을 부비는 행동으로 연인에게 자신을 어필한다.
"푸흐, 간지럽다, 해."
"간지러우라고 한거야. 애인이 바로 뒤에 있는데 외간 남자를 입에 올려?"
"긴쨩이랑 신파치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해!"
"벌을 줘야겠어."
"아니 무슨, 야! 이 멍청이 치와와가!! 내리라, 해!!!"
소고의 애교에 금방 의도를 알아차리지만 놀리듯 일부러 모르는 척, 의도를 무시한다. 대신, 흔치 않은 어리광에 보답하듯 카구라는 소고의 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무덤덤한 첫 고백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기우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수에서 애인으로 포지션이 바뀐 상대는 생각보다 질투가 심했고, 속박하길 좋아했으며 생각대로 중증 도S였다. 그런모습마저 좋아하게 되어버렸지만, 가끔은 도를 넘는 질투에 기가 찬 적이 적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혼자 열에 받쳐 보란듯이 어깨를 감싸면서 손을 잡는다든지, 해결사로 일을 하러 연락이 되지 않으면 칼부터 뽑아들고 무슨 일을 했는지 보고를 하라는 등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여기서도 질투라니, 갑작스럽게 자신을 들어올리는 카구라는 전과 다르게 소고의 페이스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번엔 무슨 스위치가 들어간거냐, 해!!!!
"...그래서 벌이 이거냐, 해."
"차이나, 넌 잘 모르겠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건 꽤나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일이라고?"
"꼴사납게 이불로 말아놓는게 어디있냐, 해! 이거 풀으라, 해!!"
"벌인데, 풀어달라고 해서 풀어주겠냐?"
"으익, 풀기만 해 봐라, 해. 넌 이제 죽었다, 치와와!!"
"애인이 치와와냐? 이쁘게 안부르지."
"으으,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해!"
"나는 나. 너는 너. 다르지. 치와와가 아니고 소.고. 아, 창피하면 소군, 이라고 불러도 좋아."
"미쳤냐!!! 내가 부를것 같냐, 해!! 절대, 죽어도 안부른다, 해!!"
얄미운 카구라의 코를 아프지 않게 비틀고는 옆에 눕는다. 카구라와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찬찬히 감상한다. 찡그린 얼굴, 분하다는 얼굴, 그리고 창피하고 당황하는 얼굴. 실시간으로 변하는 얼굴에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참지 않았다. 미쳤어, 미쳤어를 연발하는 카구라의 모습에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운 소고는 문득, 조금 전의 카구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얼굴,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봐서는 안되었을 얼굴. 안그래도 좋아죽는 애인이 더 좋아죽을 것 같았다. 우는 얼굴, 새빨개진 얼굴, 그리고 흥분과 사랑으로 가득 찬 얼굴. 다시 보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욕심을 억누른 소고는 문득 카구라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난 소고에 당황해 뭐, 뭐냐 해… 라는 카구라의 말은 살짝 무시하고 말려있는 이불을 활짝 펼치고는 카구라의 손을 잡고 이끌어 함께 마주보며 누었다.
"카부키쵸 여왕님 손이 그렇게 잡고 싶었냐, 해?"
"응…"
"오, 오늘따라 왜이렇게 솔직하냐, 해… 소름끼친다, 해…."
"그야 오늘이잖아? 다시는 오지 않을 날인데. 오늘만큼은 조금 솔직해져도 되잖아."
"적응이 안된다, 해…"
"익숙해져."
"또 이럴거냐, 해?"
"아-니."
손등에 한번, 손가락 하나하나에 한번, 그것도 모잘라 마디마다 한번씩 입을 맞추는 소고는 일부러 질척한 소리를 크게 낸다. 소고의 입술과 카구라의 파부가 맞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카구라도, 점점 발개지는 피부도, 아까까지만 해도 잘만 맞추던 눈을 점점 회피하는 시선도 너무 사랑스럽고 즐거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 기억해 두었다. 두 손에 모두 키스하는 것을 끝냈지만, 소고는 멈추지 않고 팔의 안쪽으로 입술을 옮겼다. 숨을 가쁘게 고르던 카구라는 급하게 들이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닿은 곳은 팔목으로 그나마 타격이 덜한 부위였으나, 멈추지 않는 소고의 입술은 기여이 카구라의 가장 민감한 팔뚝 안쪽 살까지 다다랐다.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그대로 내뱉은 카구라의 어깨를 지나, 떨리는 목에 잠시 머물었다, 점점 내려오는 소고의 머리를 급하게 저지한다. 아니, 이 이상은 절대로 무리니까!
카구라의 예상과는 다르게, 소고는 배에서 하강을 멈췄다. 그대로 카구라를 두 팔로 껴안은 소고는 머리를 한번 더 부비적 거렸다. 처음 겪는 애교라 잠시 당황했으나, 여전히 삐진것이라 생각해 말없이 갈색 머리에 얹은 손을 움직여 살살 쓰다듬어줬다.
"차이나…"
배에서 웅얼거리는 소고의 말울림에 카구라는 작게 떨었다. 확실히 처음 해 보는 자세라 익숙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 애인 너무 귀엽다.
"너 팔뚝살 올랐더라? 살쪘냐?"
"이게, 미쳤다, 해!! 레이디에게 할 말이 있고 없는 말이 있다, 해!"
"아니 나는 정말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비만으로 힘들어하는 애인은 이쪽에서 사양이니까."
"그런 애인도 받아주는게 애인 아니냐, 해! 너, 너야말로-…"
반박을 하고 싶어도 원통하게도 소고의 단단하고 잘 잡힌 몸은 변하지 않았었다. 필사적으로 어딘가 약점을 잡을 곳이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카구라를 빤히 쳐다보던 소고는 더욱 팔을 단단히 했다. 만질 수 있는 등 라인을 살살 만져주니 다시 발그래진 얼굴로 손등을 탁탁 친다. 내 손은 모기가 아니라고. 투덜거려보지만 닿지 않는다. 이에 질새라 카구라도 소고의 등허리를 만진다.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카구라와 눈을 마주치지만 오히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카구라의 숨겨있던 S에 불을 붙여 버렸다. 사악하게 웃는 저 얼굴은 대체 누군한테서 배운거야, 몸을 잘게 떨면서 입술을 꽉 깨문 소고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치와와주제에. 드디어 이름 구실을 하는구나, 해."
"누가, 흣, 치와, 와냐, 고… 제대로, 부르랬,지."
"너 귀엽다는 소리다, 해. 바-보."
혀를 낼름 내밀고는 살살 어루만저던 손을 쫙 펴 찰지게 한번 내리치고는 훌쩍 침대에서 내려간다. 아까전의 손등을 친 강도와는 확연히 다른 강도로 얼얼해진 등을 제대로 피지도 못한채 당항해 카구라를 급히 부른다. 샘통이라는 듯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욕실로 쏙 들어간 애인은 시원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짧게 보여주었다. 어이없다는 감정과 더불어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에, 그대로 힘이 빠져 침대 위로 다시 쓰러진다.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자, 물소리가 규칙적으로 나는 욕실로 얼른 들어가기 위해 서둘러 숨을 고르고 등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얼얼함이 가라앉기를 잠시동안 기달렸다.
'좋아.'
충분히 움직여도 될 상태에서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일 카구라의 반응을 생각하느라 소고는 몇초간 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건을 집어 던질까? 욕을 할까? 당황해 할까?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을 지도. 아, 그건 좀. 생각이 이곳까지 미치자, 소고는 주저않고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 문을 향해 똑바로 직진해서 들어갔다. 짧은 놀람의 비명과 대화가 주고받은 후, 소리는 끊겼다. 호텔 30층 스위트룸의 열기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