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카구] 너에게
bgm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서 그 작은 등을 꼿꼿이 펴고는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나 또한 달려가고 있기에 놓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추월할 수도, 잡을 수도 없었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울리고 싶어하는 얼굴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면서 약올린다. 한번은 나란히 달린적도 있었다.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작은 얼굴에 주먹을 내리꽃기도, 내 다리에 로우킥을 날리기도 하면서 달렸다. 비밀이지만 반대쪽을 맡긴 기분이라 되게 든든했다. 이게 알려지면 평생 놀림각이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핸드폰도 잠잠했고 마당에 하루가 멀다하고 울려대는 새소리도 없었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오후가 가까워지는 아침인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런데도 다들 아침에 나오면 안된다고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는 조용했다.
아, 아침 회의 가야 하는데. 또 히지카타가 할복하라고 하겠네.
조용했다. 아침 회의에 나가지 않은 녀석은 할복이다아. 너 말이다 소고 이 자식아아아!!!!!!!! 라고 외치면서 뒤에는 부하들을 소시지처럼 줄줄이 매달고 칼을 휘드르면서 나를 찾아다닐 히지카타가 없다. 세상이 음소거가 된 상태라도 된건가. 에도, 이 거리에서는 그게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에 겁을 먹고 허둥대는 녀석이 더 이상하겠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저마다의 일을 하는 진선조 둔영이 휑하다. 꼬박꼬박 나와서 배드민턴채를 만지고 있는 야마자키의 모습도 보이지 않다. 뭐, 상관없나. 조용해서 좋구먼.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넘기고 다시 방으로 가고 나니 그제서야 두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빈 진선조 둔영이라면 오늘 하루는 자신의 땡땡이를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둘째, 어제 콘도상이 맡기고 간 해결사에 가져다 줄 작은 짐 하나. 젠자앙, 고릴라! 콘도사앙!!
딱히 빈둥댈 일도 없지만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이불속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최근에 과격파 양이지사를 소탕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담당헸던 참이라 휴식이 간절했다. 젠장. 히지카타 부탁이면 여기서 해결사네로 그냥 던지면 되는데, 콘도상의 부탁이라니. 누군가의 묘략이 틀림없다. 히지카타를 보는 순간 죽인다.
한숨을 쉬면서 옷장을 열어 익숙하게 제복으로 손을 뻗는다. 자신의 움직임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어느순간 익숙해지면서 괴롭혀주고 싶은 목소리가 뒤통수를 강타한다. 갈때까지 간 건가. 고개를 한번 휘 내젓고는 다시 제복을 집으려다 멈춘다. 콘도상의 개인적인 부탁이지, 진선조의 일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즐겨입는 유카타를 꺼내든다. 입으면서도 슬쩍 드는 의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내렸다. 왜? 그냥 평소대로 신경쓰는 것 없이 입고 싶은것 입으면 되었는데. 왜냐고? 그래. 알고 싶다. 그거잖아, 그거. 아아, 그래. 한숨이 나올 정도로 남인 상대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계기를 만들어서 가야 한다. 왜 왔어? 그냥 놀러왔어. 라는 평범한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관계니까. 아까전의 맞은 뒤통수가 간지러워 한번 시원하게 긁어주고는 방문을 열었다.
진선조 둔영에서 해결사 사무소까지 20분이라는 넉넉하다면 넉넉한 시간이 걸린다. 급할때는 괜히 형씨를 탓한다. 해결사라면서. 좀 둔영이랑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 서로 좋지 않나. 왜이렇게 멀어! 이런 생각과 생각하며 걷기에는 충분한 거리지. 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카부키쵸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마을또한 평화롭다. 아무도 없는 거리. 음, 아무도 없어. 아무도? 하도 신기한 일,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삶과는 멀다는 삶을 살다보니 마을 주민들이 없어도 마치 오늘 아침은 된장국이야, 라는 일상적인 풍경을 이야기하듯이 스쳐지나갈뻔했다. 진선조 전원이 놀러갔다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 거리 전체가 비어버렸다? 슬슬 안좋은 느낌이 발목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쉴틈없이 소란스러운 거리가 갑자기 정적으로 가득차니까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어느순간부터 이제는 떠들썩한 거리가 잊혀져버렸다. 거리에 한사람의 발소리가 울려퍼지는 것도 리듬으로 만들어 즐기던 시선이 한 가게로 멈춘다. 가게 준비를 한창 하다가 천인들에게 납치라도 당했는지 셔터는 완벽히 올라가 있었지만 문패에는 여전히 closed가 쓰여져 있고 가게 정리도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고 화창한 완전한 꽃놀이 날씨이다.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쨍하니 비춰지는 햇빛에 저절로 눈이 찌뿌려진다. 눈이 부시게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들이 저마다 광을 낸다. 거울 하나만은 청결을 유지하는 건가. 별 생각없이 거울 앞에 서 봤다. 몸이 햇빛을 가려 거울은 더 이상 햇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그늘진 거울 속에 똑같은 자신이 눈을 멍하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다.
거울을 봤으면 한번씩 머리는 만져주는 것이 예의다. 잘 정돈된 앞머리도 괜히 한번 더 만져주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면서 얼굴도 만져보면서 자꾸만 차림새에 신경을 쓴다. 머리와 옷 색을 깔맞춤이라도 하듯이 비슷한 색으로 입는 너가 생각나 옷깃도 한번씩 만져본다. 갈색 유카타는 아니지만 딱히 갈색 계열에서 많이 벗어난 색은 아니다. 너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코를 후벼파며 지나칠 것이지만 아, 자꾸만 밟힌다. 한참을 거울 앞에서 떠나지 못하길래 결국 눈을 감고 갈길을 재촉하면서 일부러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눈에 밟히는 거울이란 모든 거울 앞에서 멈춰서서 머리를 한번씩 만지는 것이다. 심지어 처음 거울을 봤을때는 꽤나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머리였는데 말이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든다.
플래그인가, 왜이렇게 감성적이야. 정신을 놓은 채 거울을 정신없이 들어다보니까 몇번째인지도 셀 수 없었다. 해결사 사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당고 가게를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거울로 향하는 발걸음을 잡을 수 있었다. 정신 차리고, 사무소로 곧장 향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당고 가게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건 너가 엄청난 먹보여서다. 사무소를 들릴때마다 함정을 파 놓은 간식을 주지만 언제나 좋다고 달려드는 너. 그게 재미있어서 더 가져오는 부분도 있다. 이제는 속지 않는다면서 손도 데지 않는 형씨나 안경이 텐션도 높여주기도 했지. 들리는 소문으로 당고 많이 먹기 대회에 해결사 삼인방이 참가했다. 질려하지는 않을까? 2개? 아니야. 4개. 그래 4개 정도를 사 가야지. 지갑을 꺼내 익숙하게 지폐 두장을 꺼내고 주인장, 당고 4ㄱ- 여기까지 행동하고 나서야 주인은 없고 이 가게는 심지어 셔터마저 올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폐가 손에서 벗어나 바닥으로 팔랑팔랑 떨어질때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물론 히지카타 죽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절로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앞머리가 엉망일텐데, 기껏 한걸음마다 멈추면서 다듬은 머리가 제멋대로 붕붕 떠올랐다는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짜증을 내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인데도 짜증한번 내지 않고 홀린 듯 몸을 굽혀 떨어진 지폐들을 줍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짜증이 조금 났다. 한곳에 가만히 있으면 지폐의 기능을 상실한 종이 쪼가리가 되는것도 아닌데 몸을 움직여 주워야 할 정도로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짜증이 목 끝까지 차 올랐지만 뱉어내지 못했다. 급하게 먹어서 눈물이 고일 정도로 괴로워하던 너가 물을 달라고 손을 뻗는게 환상으로도 그려진다.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순찰하다 만나지 않은 적이 더 없을 정도로 자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너는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고 꼭 목이 메어서 괴로워했다. 장난으로 물을 머리 위로 쏟았다가 진짜로 쓰러진 너가 자꾸만 밟혀 주머니에는 작은 물병이 항시 준비되어있다. 마지막 지폐를 줍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 아주 생생하게 눈앞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재생되었다. 작은 물병이 떨어졌고 있는지도 몰랐던 발치의 거대한 똥으로 백점 만점의 입수를 하면서 기껏 신경 쓴 바짓가랑이에 똥이 튀었다. 물이 찰랑이는 것에 팔려 물병이 어디로 떨어지는 지도 모르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심했다. 욕이 나오려던 찰나였다.
"사디? 여기서 가만히 서서 뭐하냐, 해?"
조금 아래에서 태평하게 언제나의 그것을 물고 우물거리느라 발음이 다 뭉개졌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꾸만 거슬리는 옆의 허옇고 커다란 털뭉치. 왕! 하고 힘차게 짓는 거대개를 한번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쪼그리고 부시럭거린다. 커다란 눈이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지려는 찰나, 다시한번 더 너가 시야로 불쑥 나타났다.
"이거 사디꺼냐, 해?"
너가 들고 있는 그것, 습관의 무서움을 보여준 그것, 물건을 쓸 당사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들이댄 그것은 똥속으로 파묻힌 불쌍하고도 소생 불가한 작은 물병이었다.
"더럽게 똥에서 꺼내냐?"
"그럼 어떡하냐, 해. 사다하루 똥에 있는걸 그대로 버릴 수는 없다, 해. 긴쨩이 꼭 한번씩은 파헤쳐보라 했다, 해. 분리수거도 못하는 불쌍한 마다오들이 가끔 똥 속으로 쓰레기를 버린다고 했다, 해."
사디…? 안쓰러움과 경악의 표정, 그리고 의외라는 얼굴이 복잡하게 엉킨 너의 모습은 결코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거기다 최악의 상황에서 첫마주침이라는건 정말 기운이 다 빠지는 일이었다. 커다란 집게로 물병을 똥 취급하는 너가 정상이고 그 물병마저도 소중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내가 비정상이겠지.
"산책은 다 끝난거냐?"
"그, 그렇다, 해. 그건 왜?"
"해결사에 볼일이 있어. 먼저 간다."
"윽, 손님이 주인보다 먼저가는 경우 봤냐, 해! 기다려라, 해!"
나란히 걷는데 문뜩 이상함이 들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본 것이 너라는 것에 슬쩍 내려봤다. 보라색 우산에 가려졌지만 똑똑히 보이는 옆모습에 혹시 몰라 그림자도 확인했다. 아, 있다. 완전히 안심하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고 스쳐보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고 만져지는 느낌이 생생해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잠깐만 기달려라, 해. 가게 좀 들리겠다, 해."
가게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가만히 기달려도 기분이 좋다. 청아한 웃음소리와 네다섯명의 아이들이 앞을 지나가도 기분이 좋았고 가게 주인이 하품을 크게 하면서 가게 앞에 물을 뿌리는 풍경도, 고개를 들어 느리게 움직이는 구름을 봐도 기분이 좋았다.
"뭘 히죽히죽 웃는거냐, 해? 기분 나쁘다, 해."
"팔 한가득 간식으로 채워져서 히죽히죽 웃는 꼬맹이보다는 덜 기분이 나쁘지 않냐?"
"얼라 주제에! 간식으로 웃는것은 무효다, 해."
"그게 뭐야, 말이 안되잖아."
"기분 좋은것과 간식은 말이 안되도 된다, 해."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더니 갑자기 멈춘다. 따라 멈추니 크게 어깨를 들썩이더니 몸을 돌려 마주한다. 새빨개진 얼굴이 들고 있는 작은 박스에 지지 않는다.
"팔 줘라, 해."
"팔?"
"빨리!"
이건 또 뭔 억지인가 싶어도 기분이 좋으니까, 라는 기분좋음이 팔을 내밀었다. 절대로,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기분좋음의 의지로 취한 행동이었다. 급하게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이, 너는 들고있던 취향 갈리는 간식을 모조리 넘겨줬다. 너무 급작스런 행동에 서둘러 자기합리화를 마치고 너를 불러보지만 이미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많이 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두 팔이 봉쇄되었다고 해도 두어걸음이면 따라잡을 거리였다. 다시 앞질러 짐을 왜 떠넘기냐고 화를 낼 생각이었는데 너는 빙글 몸을 돌리더니 환하게 웃었다. 햇살이 우산에 가로막혀 비춰지지 않아 반짝거림의 효과도 받지 않는데도 반짝인다. 눈이 부셔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손바닥 가까이에 있는 작은 박스 하나가 잔뜩 구겨지고 내용물이 짓이겨질 정도로 움켜쥐어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이 상황이 일시정지가 되어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원하던 것이었다.
"오늘 특별한 날이냐. 해?"
너가 돌아보면서 웃는 장면에서 어느새 해결사 계단 앞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놀라서 대답을 못해도 대답을 바란건 아니댜, 해. 하면서 차근차근 품안의 작은 박스들을 자신의 품으로 옮기 시작했다. 작고 하얀손이 몇번을 왔다갔다 했을까, 어느새 자유로워진 양 팔인데도 작은 박스들을 안고 있었던 포즈를 풀지 못했다. 거대개가 먼저 뛰어가고 너가 뒤따라 오르더니, 다시 멈춘다. 오늘따라 많이 멈춘다. 이 거리도, 사람들도, 너도, 그리고 내 심장도.
"오늘 머리랑 옷, 굉장하다, 해."
삐죽거리면서 웅얼거렸지만 똑똑히 들렸다. 머리는 바람에 날렸고 정돈하지 못해 엉망이고 옷에서는 다시마초절임 냄새와 똥냄새가 섞여 지나가던 꼬마가 냄새! 하면서 코를 움켜쥐고 달려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내 머리를 보고 거울을 보고 자신들의 머리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이 모든게 다 필요없다. 너가, 너가 알아줬다.
"아~~~ 망할 차이나. 나도 들어가야 한다고…"
그럼에도 주저앉아 하염없이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갈 것을 기다렸다 일을 떠넘기고 갈 것이다. 지금의 너도 나도 꼴이 엉망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