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히지] 천국과 지옥
긴히지 60분 전력 제 21회
주제: 천국과 지옥
지구대 경찰관 긴토키 X 형사 히지카타
더운 여름날, 꿈의 직장은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다. 그 어떤 힘든일이라도 시원한 곳이라면 효율이 가장 높고 의욕도 가장 높을 텐데, 히지카타는 목 끝까지 채운 셔츠의 단추를 결국 두개까지 풀었다. 드러난 목덜미가 그제서야 환기가되며 조금이라도 답답함이 사라지자 살았다는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손부채를 팔락팔락해도 더운 바람만이 히지카타에게 불어왔고 전혀 가시지 않는 더위는 히지카타의 짜증지수를 높이기 충분했다. 아예 옷을 다 벗어던지고 땡볕을 걸어다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내쉬는 숨마다 더위가 치솟는 느낌에 히지카타는 숨조차 맘편히 내쉬지 못했다. 너무할 정도로 높은 온도는 히지카타의 단추를 풀기 위해 슬금슬금 손을 움직였다. 갑자기 들러붙는 커다란 몸은 슬쩍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망설이는 손을 쳐서 결심이 덜 된 히지카타의 세번째 단추를 풀렀다.
"형사니임~! 오늘도 섹시하세요! 어? 오늘은 단추를… 세개...나?!"
"…."
"아잉, 몰라요~! 긴상을 위한 서프라이즈 선, 물?"
품, 옆에서 들려오는 오키타의 노골적인 비웃음과 필사적으로 참으려 했지만 비집고 튀어나온 곤도의 웃음소리는 히지카타의 인내심 시험의 마지막 과제였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참지 않았다. 들러붙은 긴토키를 필사적으로 떼면서 여전히 두 눈은 히지카타와 긴토키에게 고정된 오키타에게 바락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 웃겨 죽을 것 같은 곤도의 말리느니 가만히 있는것이 더 나을 행동에는 허공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소리를 빽 지르는 것으로 그냥 넘겼다.
드디어 입성한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에서 히지카타는 차갑게 식어진 소파에 몸을 녹였다. 내려오기 전, 정장을 입고가려는걸 옆에서 말린 오키타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맙게 느껴졌다. 얊은 셔츠인데도 땀에 푹 절어 온 몸에 들러붙은 것이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이 조금은 말려주는 기분에 히지카타는 기분좋게 눈을 감았다. 몸에서 냄새 날 것이 뻔하지만, 벌써 3일 내내 퇴근은 커녕 바깥구경도 못해 잠깐 든 걱정은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금새 훌훌 날라가 공중분해 되었다.
"와~ 여기 놀러 왔냐, 히지카타야. 오자마자 늘어지는 거 봐라. 죽어."
"차 안에서 내내 잠만 쳐 잔 너가 하면 안되는 말 아니냐."
"그러니까 곤도상이 교대하자고 했을때 교체했으면 된거 아니냐고, 망할 히지카타야."
"3일 내내 너가 미룬 서류들 처리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잔 사람한테 어떻게 운전하라고 하냐! 그러니까 면허 따라했지!!"
"그깟 운전 한번 했다고 이리 늘어지다니… 히지카타상은 체력부터 길러야겠는데요?"
"뭐, 할 말 다했냐, 새꺄!!!"
"자자, 형사님들 싸우시면 어쩝니까. 사건 해결하러 협력을 요청하러 오셨잖아요!"
"놔봐. 내가 저새끼 죽기 직전까지만 패고 형사직 때려친다."
"아, 형사니임~!"
울컥한 히지카타를 양 팔로 붙잡고 진정한 긴토키가 말려보지만 시원한 실내에도 히지카타의 열을 올린 오키타 향한 히지카타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혀지지 않았다. 으음, 곤란한 표정을 짓던 긴토키가 결심한 듯 히지카타를 번쩍 안아들었다. 오키타를 향해 휘두르던 두 팔과 다리는 허공을 향해 휘적이게 되었고 순간 히지카타는 화를 내기 위해 벌렸던 입을 다무는 것을 잊어버리고 벙쩌버렸다. 오키타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토키와 히지카타를 아무말 없이 바라봤다. 그 상황에서 혼자만 정상적 사고를 하는 긴토키가 몸을 빙글 돌려 소파 앞 탁자로 히지카타의 시선을 끌었다. 갓 타온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담긴 큼직하고 시원해보이는 얼음은 높은 시선에 있는 히지카타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 얌전히 양 다리와 팔을 원상태로 돌리고도 내려놓을 기색이 없는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팔뚝을 쿡쿡 찌르면서 내려놓으라고 새침하게 말하고나서야 내려줬다. 옆에서 생글생글 웃는 긴토키는 제쳐지고 소파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히지카타에 오키타가 얼음땡 하고는 긴토키를 향해 몸을 쭉 내밀고는 흥미롭게 질문했다.
"와, 정말 형씨처럼 망할 히지카타를 잘 다루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볼때마다 감탄한다니까요? 어떻게 그래요?"
"하하, 제가 형사님을 워낙 좋아해야죠."
"으웩… 히지카타상은 형씨나 다루세요. 그거면 평생 다루지 않을겁니다."
"칭찬으로 들을께요."
"아, 곤도상."
"다들 조금은 쉬었지? 이제 슬슬 일하고 얼른 퇴근하자!"
창고에서 커다란 박스를 두개나 가져온 곤도의 등장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푹 빠진 히지카타가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힘겹게 걸음을 떼는 곤도의 모습에 잔을 내려놓으려는 히지카타의 행동은 긴토키보다 조금 느렸다. 금새 가벼워진 두 박스는 두명에게 나눠져 일어서려고 엉거주춤 일어나려던 히지카타를 다시 앉혔다. 히지카타가 앉은 소파로 세명이 모두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에도 경찰서 강력범죄 1팀의 출장이 시작되었다.
"사건은 지난 새벽에 2시에서 3시쯤. 피해자는 타나비타 류이치, 24살에 대학생입니다. 아르바이트 후 귀가하던 중 살인을 당했고요. 입으로 비명을 막고 깔끔하게 심장을 찔러서 즉사시켰어요. 흉기도, 목격자도 아무것도 없이 현장에는 피해자의 피 뿐이에요. 원한 살 인생도 아니고요. 근데 이거 정말 잡을 수 있어요?"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사건을 짧게 브리핑하는 오키타에게 대답했다. 눈두덩이를 만지는 곤도는 정말 피곤해 보였다. 다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헛들이키는 히지카타 또한 동일했다. 오키타는 대답없는 상사들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렸고 초점없는 두 눈은 방황했다. 익숙하다는 듯 긴토키는 자신의 몫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이전부터 긴토키가 맡은 관할에서 끊임없이 사건사고가 크고 작게 일어났다. 절도, 가택침입, 실종, 소음, 폭력 등등 다양한 사건들이 작은 마을의 여러곳에서 불규칙적으로 벌어졌다. 가끔 인력부족으로 다 죽어가는 폭력팀의 대타를 뛴 히지카타가 지구대 말단 경찰관 긴토키와 친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동네이면서 긴토키의 저세상 친화력의 콜라보는 철벽 히지카타조차 버티지 못햇다. 히지카타와 같은 팀인 곤도와 오키타도 긴토키와 친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설탕을 가득 넣어 달달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다 죽어가는 히지카타에게 달콤한 시선을 쏘아댔다.
"형사님, 많이 힘드세요?"
"아. 협력을 부탁해 놓고 이렇게 추한 꼴을 보여줬네요.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저, 얼핏 들은거로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서 수사에 진전이 없는거에요?"
무겁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쉰 히지카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커다란 상자에는 이제껏 마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기록한 일지들로 빼곡했다. 아무거나 집어 든 히지카타는 가볍게 사건들을 훑어봤다. 자세히 읽지 않은 히지카타 어깨 너머로 훔쳐보던 긴토키가 갑자기 말을 했다. 방심했을뿐더러 옆에서 갑작스레 닿는 뜨거운 입김에 흠칫 놀란 히지카타는 들고있던 사건일지를 떨어뜨리면서 귀를 감싸고 긴토키에게 고개를 확 돌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듯 눈을 댕그랗게 뜬 긴토키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히지카타가 떨군 사건일지를 주워들면서 질문했다. 곤도와 오키타 역시 처음보는 히지카타의 반응에 보던 것을 멈추고 둘을 바라봤다. 긴토키는 옆에서 째려보는 히지카타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이거 사건을 기준으로 일주일 전쯤 일어났던 절도사건인데, 피해자가 타나비타상이에요. 저저번주의 폭력 사건은 가해자가 타나비타상이고요."
"뭐? 그런 관련이 있었다고?"
"네. 저번에 형사님이 맡으신 작은 다수의 폭력사건이랑 절도사건이 여기 써져 있더라고요. 이것도 단서 아니에요?"
"맞아! 와, 사카타 경찰, 예리한데?"
"아니에요! 히지카타 형사님께서 이 수사일지를 보지 않으셨으면 저도 몰랐을걸요."
"뭡니까 히지카타상, 형씨도 눈치챈걸 못알아채다니, 감 다 떨어졌습니까?"
"닥츠라…"
이제야 좀 진전이 되는구먼! 한아름 짐을 덜은 가벼운 얼굴로 긴토키의 등을 두드린 곤도가 다시 자료 수사를 진행했다. 얼굴이 펴진 곤도에 비식 웃은 히지카타도 서류로 집중했다. 사건일지가 너무 많아 긴토키의 협력으로 컴퓨터로 타나비타 류이치 이름을 쳐서 관련된 사건들을 추리기로 한 1팀은 사건일지를 조금 뒤적이다 컴퓨터 앞으로 몰려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히지카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긴토키를 잠시 지켜보던 오키타는 고개를 으쓱했다. 일부러 일어나서 수고했다는 곤도상의 칭찬에도 망할 히지카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데 뭐 별일 있겠어.
두번째 사건은, 두번째 연쇄살인은 다음날에 바로 일어났다. 그러니까 히지카타네 팀이 내려온 다음날 새벽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저번과 달리 현장이 일어난 마을에 있던 히지카타와 곤도, 오키타는 긴토키의 순찰자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로등 아래라는 타나비타의 현장은 아니지만 똑같은 장소에서 흥건한 피 위로 쓰러진 사람에 히지카타는 절로 눈쌀을 찌푸렸다. 정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마을이잖아.
"피해자는 휴고 에이치. 나이는 30. 역시 귀가하던 중 타나비타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되었습니다."
"젠장… 연쇄살인이냐고."
"그러게말입니다. 장소도 똑같고. 이전까지는 무차별적이라면 이번엔 목적이 확실한 것 같은데요."
"피해자 조회는?"
"이번에는 아무런 기록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타나비타와 같은 마을이지만 접점은 없고 지인들도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어떤 또라이새끼가…."
거칠게 머리를 헤집고 담배를 무는 히지카타에게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조용히 지켜보던 긴토키가 히지카타를 톡톡 두드렸다. 전날 긴토키가 의도치않게 히지카타를 깜짝 놀라게 한 뒤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 뒤에서 부를 것이면 미리 신호를 주고 말을 하라고 일러두었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웃음으로 알았다고 하는 긴토키의 모습에서 커다란 꼬리가 보이는 착각을 한 히지카타는 일부러 세개 긴토키의 발을 밟아줬다. 왜그러냐고 발을 붙들고 괴로워하는 긴토키를 애써 무시하며 정신 차리자고 다짐했다.
"형사님, 왜 여전히 언짢으세요?"
"뭐? 시비털러 왔냐?"
"아니… 들어보니까 이제 단서가 생긴거 아니에요?"
",,,뭐?"
"또다른 피해자가 생기면서 공통점이 생기니까 범인에 한발짝 다가간 것이잖아요. 그럼 좋아해야 하는거 아닌가?"
"씨발, 너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네?"
"이게 무슨 단서찾기 게임이라고 생각하는거야? 사람이 죽었는데? 그리고 단서는 개뿔.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먼저냐?"
"형사님은 이 사건을 빨리 해결하려는 거 아닌가요?"
"야, 씨발… 너랑 얘기가 안통한다. 감식반 오면 너가 안내해줘. 다 들었다고 했지?"
"어, 어, 형사님?"
반도 다 피우지 못한 담배를 바닥에 내팽기치고 발로 비벼 끈 히지카타는 어제와 똑같이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별 또라이를 다 봤어. 히지카타는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을 긴토키가 보란듯이 놀리는 것 같아 기분이 더욱 복잡해지고 언짢아졌다. 수사에 큰 진전을 준 것은 긴토키이긴 하나, 이렇게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인지는 몰랐다. 사람이 죽었는데 뭐, 좋아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쯧, 혀를 찬 히지카타는 담배 자판기 앞에 멈췄다. 반도 피우지 못한 담배가 마지막이라는 것은 긴토키에게서 등을 돌리고 주머니를 뒤질때 알아차렸다. 텅 빈 주머니에 지갑마저 흘리고 온 것을 그때 알아채지 못한 것에 애꿏은 담배 자판기만을 발로 찼다. 이미 담배 버튼을 눌러 돈만 집어 넣으면 되는 거였는데. 눈앞의 떡을 먹지 못한 기분에 히지카타는 셔츠를 팔락이면서 사건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긴토키가 쎄한 느낌을 줬든 주지 않았든 지금 히지카타는 담배를 피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
히지카타는 사건현장에서 긴토키 옆에 떨어진 자신의 지갑을 줍지 못했다. 이제 막 도착했는지 장비를 주섬주섬 꺼내는 감식반은 행동을 멈추면서 긴토키에게 다시 되묻고 있었다. 긴토키는 히지카타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차갑디 차간 목소리로 감식반에게 짧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감식하실 필요 없다고요."
"….?"
"이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올거니까, 돌아가셔도 좋아요."
"아니, 그-"
"라고 형사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예…?"
"더운 여름에 수고하십니다."
생긋 웃은 긴토키는 감식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형사의 직책이 언급되자 어쩔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장비를 챙겨든 감식반은 아무런 감식도 하지 않고 사건현장을 떠났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현장을 훼손하면 안되기에 마스크에 장갑까지 착용해 짜증지수가 높았을텐데도 긴토키에게 아무말 하지 못했던것은 에어컨만큼 냉랭한 긴토키의 목소리와 눈빛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히지카타는 생각했다. 감식반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긴토키는 움직였다. 긴토키가 현장을 뜨면 지갑을 주우려 움직이려는 히지카타는 순간 몸이 굳어진 광경을 목격했다. 천천히 몸을 굽혀 떨어진 히지카타의 지갑을 주워들은 긴토키는 흙이 묻어 더러워진 작은 가죽지갑을 툭툭 털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수십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지갑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고 현장을 뜰때까지 그 어떤 생각도 문장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긴토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고서야 히지카타는 사건현장이 아니라 지구대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지구대에서 히지카타는 아무런 집중도 할 수 없었다. 사건또한 하나 더 늘어났을뿐 진전되지 못했다. 하루종일 자신이 세운 가설을 입증할 계획을 생각하느라 어느덧 뉘엇뉘엇 지는 해에 잠시 숙소로 돌아가는 곤도와 오키타와 긴토키를 놓칠뻔 했지만 급하게 따라가는데 성공했다. 단서가 있을라 사건일지를 눈이 빠지도록 검토하는 곤도, 찝찝하다면서 화장실부터 들어간 오키타와 멀뚱히 침대에 앉은 히지카타까지 그 누구도 입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진전되지 않는 사건에 기세가 꺾인 지금 무슨말을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무거운 침묵에 채 내뱉지 못한 무거운 한숨에 히지카타는 귀를 활짝 열었다. 지구대에서 열심히 생가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작은 결심이 필요했다. 아닌척 했지만 정답게 붙어오면서 미운짓 하나 보여주지 않은 긴토키를 의심하는 것은 귀신 형사 히지카타도 내키지 않았다. 오히려 히지카타는 이 계획이 긴토키의 무죄를 확정지어주길 바랬다. 어느새 다음날 수사를 위해 불을 끈 방에서 홀로 침대에 앉아있던 히지카타는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얊은 벽이지만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일어나지 않는 곤도, 코를 고롱고롱 골면서 깊은 숙면을 보여주는 오키타는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였다. 조심조심 혹시나 팀원들이 깰까봐 조용히 긴토키의 뒤를 쫓았다.
긴토키는 검은 후드에 검은 모자를 쓰고 소리없이 거리를 걸었다. 가로등이 가끔 긴토키를 비추었지만 여름 햇살 아래서 반짝이던 긴토키의 은빛이 얼핏 보이는 하얀 머리카락은 전혀 보여지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그런 긴토키가 너무 낯설어서, 자신이 진짜 사카타 긴토키를 쫓고 있는것이 맞는지 계속해서 의심했다. 잔뜩 풀린 얼굴로 헤실 웃던 긴토키는 가로등으로 비춰지는 싸늘하게 굳은 옆얼굴로는 도저히 매치되지 않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가끔 부린 과일 투정에 꼭 저와 닮은 반짝이는 시원한 체리를 한아름 들고오던 긴토키의 눈빛만이 여전했다. 다만 시원하게 빛나는것이 아니라 서늘하게 빛난다는 차이가 있었다.
'어디까지 가려는거야.'
첫번째 피해자 타나비타보다 더 멀리, 두번째 피해자 휴고보다 더더 멀리 걸은 긴토키는 걸음을 멈추고 히지카타처럼 골목에 숨어 숨을 죽였다. 긴토키가 숨은 골목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몸을 웅크린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냥 마중나온거 아닐까? 이 동네에서 근무했으니까 친한 사람 한명쯤은 있을거 아니야. 그래, 조금 지독한 장난일거야. 간절한 히지카타의 바램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서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긴토키에 점점 끝이 흐려졌다. 장난… 감을 꺼내는거…. 히지카타또한 바로 앞까지 발자국 소리가 도달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품에서 나온 손은 손수건과 그리고, 칼이었다.
'장난감일리 없잖아.'
9포인트로 빼곡히 적혀 꼼꼼히 읽는데 눈이 따갑고 건너뛸 정보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일지를 채 3초도 보지 않고 대충 넘기는 와중에 타나비타의 사건이 적힌 페이지를, 부분을 정확히 집은 긴토키. 죽은 휴고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단서가 생겨서 좋지 않냐고 물어보던 긴토키. 감식하러 온 감식반을 돌려보낸 긴토키. 곧 단서가 나올것이라고 장담한 긴토키. 이 모든것이 한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안차리냐, 망할 히지카타!"
탕, 챙그랑. 단발의 총소리로 팔힘을 잃고 칼을 떨군 긴토키의 오른손 어깨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났다. 억세게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옴짝달싹 못하게 잡고 있던 왼손 또한 힘이 쭉 빠지면서 눈물 범벅인 피해자는 긴토키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다. 아직 교복을 입은 학생은 총알이 날라온 곳으로 뛰어갔고 학생을 보호하느라 발이 묶인 오키타는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발, 지금 안면 튼 사람이라고 망설이는 거냐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저앉은 긴토키에게 수갑을 채우려 달려갔지만 손으로 지혈해도 피가 멈추지 않는 긴토키에 히지카타는 잠시 멈칫했다.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수갑을 꺼내들려하지만 어느새 가득 찬 땀에 자꾸만 쇠수갑은 미끌어져 잡히지 않았다. 씨발, 눈물날 것 같아. 범인을 잡아 기쁜 눈물인지 그 범인이 긴토키여서인지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수갑조차 꺼내지 못하는 한심한 자신때문인지 갈피를 못잡고 헛손질을 하는 히지카타의 뒤통수를 차가운 금속이 정통으로 명중했다. 보다못한 오키타가 던진 수갑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긴토키의 손에 수갑을 채우면서 떠듬떠듬 미란다 원칙을 말하는 동안 긴토키는 어깨를 지혈하는 포즈를 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미란다 원칙을 다 말하고 긴토키를 일어세운 히지카타는 오키타에게 질문했다.
"너, 여기 어떻게, 아니 고, 곤도상, 은?"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요. 일단 지구대로 가요. 곤도상은 에도 경찰서 본부로 가서 협력 요청했고요. 조금 더 있으면 도착한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히지카,"
"형사님."
갑자기 히지카타의 손을 붙잡는 긴토키에 히지카타는 흠칫 놀랐다. 여전히 울컥울컥 피가 솟는 어깨는 채워진 수갑때문에 지혈조차 할 수 없어 긴토키와 마주한 히지카타는 그 끔찍한 상처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총에 맞았는데도 여전히 눈쌀이 찌뿌려질 정도로 강한 악력에 히지카타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에는,"
하지만 곧 히지카타의 손목에서 허리로 내려가는 긴토키 손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히지카타를 잡아끌지 않고 살짝 다가와 몸을 밀착한 긴토키의 하얀 속눈썹은 달빛하나 없는 깜깜한 작은 시골동네를 비추는 유일한 불빛인 가로등에 빛났다. 긴토키의 손은 허리춤에 찬 수갑으로 향했고 더는 내려가지 않았다. 곧 수갑을 꺼내들자 피해자를 보호하던 오키타는 히지카타에게 수갑을 채우려는 속셈인 줄 알고 순간적으로 히지카타에게로 달려갈 뻔 했다. 그러나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어깨 너머 마주친 긴토키의 새빨간 눈동자에 얼어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수사에 협력하면서 뒤로는 살인을 하고있는 사람을 섣불리 건들여서는 안돼었다. 대신 아파요… 작은 칭얼거림이 나올 정도로 학생의 양 어깨를 세게 붙들었다.
"형사님의 수갑으로 채워주세요?"
방긋 웃으면서 히지카타에게 수갑을 쥐어준 긴토키는 덜덜 떨며 자신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히지카타의 손을 직접 움직여 오키타의 수갑 뒤로 히지카타의 수갑도 찼다. 긴토키가 양손을 흔들자 두개의 수갑이 서로 부딪히면서 청량한 소리를 냈다. 조금더 고개를 내밀어 히지카타의 귀에 대고 알겠죠? 한 긴토키의 목소리는 설탕을 잔뜩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더 달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