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카구] 흥미와 사랑 사이
조용한 복도를 울리는 구두 소리에 폭신한 귀가 쫑긋 올라갔다. 열심히 굴리던 큐브를 내동댕이 치고 후다닥 달려가 통유리에 몸을 바싹 기대서 통로 끝을 유심히 관찰한다. 쉴새없이 흔들리는 꼬리는 곧이어 코너에서 모습을 드러낸 연구원에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힘차게 바람을 일으켰다. 연구원의 움직임에 맞춰 똑같이 움직여 통유리 바로 옆에 위치한 철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쉴새없이 붕붕거리는 꼬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철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연구원에게 달려들었다.
“실험번호 245985번, 장기검진 시간이다, 해.”
차갑고 냉정하고 귀찮다는 말투이지만 실험체는 연구원이 오는 이 시간만을 기달렸다. 앉아, 라고 명령하는 연구원의 말에도 고분고분 침대에 걸터앉자 실험체 앞에 무릎을 꿇은 연구원이 가져온 상자를 열어 주사기와 붕대, 그리고 이것저것의 약통을 꺼냈다. 주사는 싫고 따갑지만, 연구원의 주사는 특별하다고 믿기에 채혈에 얌전할 수 있었다.
“다 됐다, 해. 그럼 말썽 피우지 말고 얌전하게, 뭐하는 거냐, 해!”
“얌전히 피 뽑아줬는데,”
“그건 당연한, 거다, 해!”
“상도 안주고, 말썽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만 하고,”
너무해. 연구원의 허리를 꽉 껴안은 실험체의 머리가 연구원의 허리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간지럽혔다. 안그래도 등허리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려 간지러운데, 부드러운 머리털과 더 부드러운 꼬리가 연구원의 발목을 감싸면서 연구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실험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내고는 내려다봤다. 눈꼬리 뿐만 아니라 귀도 축 늘어뜨린 채 올망졸망한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는 실험체를, 연구원은 내치지 못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활짝 벌린 양 팔이 만든 품은 넉넉했다. 덩치가 있는 실험체에게는 맞지 않았지만 쫙 펴진 귀와 바싹 올라간 채 붕붕 흔드는 꼬리는 상관없다고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안그래도 솔직하고 의사표현이 확실한 실험체인데, 거기에 더해 무의식적으로 뿜어내는 몸의 표현은 성격 좋은 사람이라 할지언정 충분히 부담스러운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안아든 실험체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은 퍽이나 다정했다.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어 주면서 귀를 살살 만져 주다가 등으로 내려간 손이 전해주는 기분 좋은 울림에 실험체는 연구원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기분 좋은 울림을 냈다.
“상은 이만하면 됐다, 해.”
팡, 하고 조금 힘이 들어간 두드림에 파드득 놀라 털이 쭈뼛 서면서 고개를 든 실험체는 따뜻하고 다정하게 내 준 품이 멀어지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약통 몇 개는 놔둔 채 몇 개와 붕대, 주사기를 챙긴 연구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철문으로 향해 곧장 다가갔다. 깔끔하고 미련을 남기지 않는 연구원의 성격이 고스란히 들어나서 좋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결국 망설이다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다음은... 언제야?”
목걸이를 카드 인식기에 대려는 손길이 멈추었다. 연구원을 붙잡았다는 작은 안도감에 아무런 대답이 없는 연구원에게 다시 말을 건내려던 실험체를 멈춘건 연구원의 싸늘한 대답이었다.
“너가 장기검진을 기다리다니, 별일이다, 해.”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연구원이 실험체를 대하는 온도 차는 일정하지 않았다. 한없이 다정하다 한없이 냉정해졌다가. 실험체는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실험체로선 한없이 다정해지는 그 상태가 너무나도 절박해서 도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꽝이었다.
그대로 철문은 닫히고, 귀의 신경을 곤두세워 보지만 채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연구원의 구두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축 늘어진 귀와 꼬리를 한 채 연구원이 오면서 내던져진 큐브를 주워 든 실험체는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달칵달칵, 큐브만을 만졌다.
“이야, 불쌍해 저 실험체.”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들어온 연구원을 맞이하는 것은 동료 연구원의 비꼬려는 의도가 다분한 시비조였다. 힐끔 시선을 잠깐 내줬다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린 연구원에 동료 연구원은 더욱 비아냥 거리면서 들고 있던 연구 일지를 들었다.
“아니~ 카구라 너가 아무리 우수한 연구원이라고 해도, 너는 여러 실험체를 맡고 있잖아? 너야 워~낙에 대단하니까 딱히 고생을 안해도 다른 실험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저 실험체는 아니잖아.”
“야,”
아까의 실험체에게 건낸 말투는 가을바람처럼 선선한 것이라고 느껴도 무색할 정도로, 단 한마디의 단어가 연구실을 차갑게 얼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식은땀에 동료 연구원의 침소리가 연구실에 크게 울렸다.
“너 누구냐?”
“뭐? 하, 이 싸가지가. 너 진짜로 싸가지구나? 그러니까 한 실험체의 심리도 모르는거지. 야, 재수없게 들리겠는데, 이거 그냥 넘기지 마라? 너만을 허락해준 저 실험체가 불쌍해서라도 응석 좀 받아줘라. 누구는 응석 받아주고 싶어도 허락해 주지 못해서 재수없는 연구원을 들들 볶아야 하는거 모르냐?”
“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너 사정까지 알아야겠어?”
“뭐, 이 개썅-”
“야야, 참아. 쟤가 누군데.”
들고 있던 연구 일지를 책상에 놓고 머그컵을 챙긴 연구원은 뒤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을 무시한 채 연구실에서 나와 탕비실로 향했다. 배치된 믹스커피를 뜨거운 물을 붓고는 휘휘 젓고는 호로록 마시는 연구원의 얼굴이 단박에 찌푸러졌다. 그와 동시에 머그컵의 손잡이를 놓쳐 머그컵이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얼얼해진 혓바닥, 아끼던 머그컵의 손실, 커피를 끓이는 데 낭비한 시간, 그리고 거슬리게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동료 연구원의 앵앵 거리는 말투가 모두 연구원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실험체가 불쌍해서라도’
연구원은 실험체가 불쌍하다고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귀 외계종에게 번식당해 돌연변이가 된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번식당하기 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을 받아 정부 보호 아래 실험실에서 머무르게 된 것이다. 평화롭게 피를 뽑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연구실 밖에서는 세금의 악용이라며 연구실을 폐쇄하라는 언론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 외계종에게 번식당한 돌연변이들 중 실험체는 더욱 특이 케이스였다. 귀와 꼬리, 비인간적으로 발달된 청각과 시각, 후각. 이 모든 것이 번식 당한 증거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은 것은 실험번호 245985 뿐이었다.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인간이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돌연변이들의 순찰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가려던 연구원은 걸음을 멈추었다. 연구실과 가장 가까운 실험체의 방은 현재 연구원이 서 있는 복도의 왼쪽으로 돌아가면 복도 맨 끝에 홀로 있는 가장 큰 실험방이었다.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서서 지능을 사용하는 실험체를 위한 특별 대우였다. 이런 특별 대우를 받는 실험체가 불쌍하다고? 연구원이 비식 새어나오는 비웃음을 띈 채로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꺄아악!”
“일단 문, 문부터 닫아!”
“카구라 어디있어! 무전 때려봐!”
“미친, 나 물렸어!”
소동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간 연구원의 손은 빈손이었다. 문을 막고 있는 동료 연구원들을 밀치고 헤쳐 들어간 곳에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낮게 그르렁 거리는 실험체가 침대에서 경계 태세로 앉아 있었다. 부풀어진 꼬리와 위협적으로 드러낸 날카로운 송곳니에 뭍어있는 피는 분명 실험체의 것은 아니었다. 발치에서 덜덜 떨면서 팔목을 지혈하고 있는 동료 연구원은 분명 실험실에서 연구원을 비꼬던 동료였다.
실험체의 울음소리는 인간이 낼 수 없는 소리였다. 등 뒤의 서늘함과 온 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에 연구원은 황망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실험체에게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느껴지는 살기와 적대감이 잦아드는 것이 둔한 사람이라도 느껴질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내는 것은 꽤나,
“실험번호 245985.”
“그릉, 크르릉...”
“...오키타 소고.”
우월감을 주었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뺨과 거친 숨소리가 닿아지는 연구원의 차가운 손바닥과 나지막히 부르는 실험체의 본이름에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숨소리 하나 내쉬지 못하는 침묵 속에서 팡팡, 실험체가 침대에 내치는 꼬리만이 소음을 만들어냈다. 완벽한 안정과 더불어 얌전해진 실험체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띈 연구원은 뒤에서 숨소리를 죽인 동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불쌍하지 않지.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그것밖에 안된다는 의미지.’
비웃음을 보이는 연구원의 얼굴에 이를 갈면서 일어난 동료 연구원은 여전히 울컥 솟아오르는 피를 지혈하면서 부축 받으며 실험방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동료 연구원이 나가면서 철문이 닫혀지자 실험체의 낮은 목소리가 연구원을 애절하게 불렀다.
“연구원님, 연구원님...”
“왜.”
“오늘따라 왜이렇게 친절해...?”
“너도 나 물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손바닥에서 얼굴을 떼면서 올려다 본 실험체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 담겼다. 내가 왜, 연구원님을 왜. 당장이라도 지하 깊숙이 자리한 실험실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흔들던 꼬리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두 손으로 연구원의 손을 잡은 실험체의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생각보다 더 긴장했다는 모습이 여실히 들어나는 정직한 표현에 연구원은 또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올려다보는 실험체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 여름이다. 연구원님에게 여름이 왔어.
“연구원님, 사랑해.”
스스로 손바닥에 한쪽 뺨을 비비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연구원의 명백한 우위를 알려주었다.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는 것도, 열림과 동시에 실험체의 마중을 받는 것도 모두 연구원의 차지였다. 이 모든 것을 가진 연구원의 표정은 아까와 다를 게 없었다. 여전한 부드러운 미소로 연구원은 고백에 대답을 했다.
“나는 너 안사랑한다, 해.”
“거짓말.”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해. 그저 흥미가 있을 뿐이지.”
단 하나뿐인 돌연변이, 자신만을 유일하게 따르는 실험체, 관계에서의 우위, 이 모든 것에서 연구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이라고 결론짓지 못했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에 아무런 타격 없이 자신 있게 부정하는 실험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해도 정답을 내리는 연구원에게 처음으로 오답이라고 대답한 실험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차갑게 무시하고 경멸의 시선을 내렸을 텐데. 다른 한 손을 들어 비단결 같은 실험체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연구원에게 시선을 올린 실험체가 씩 웃으면서 결론을 내려줬다.
“연구원님, 그거 알아?”
다른 연구실과 다르게 커다란 전구가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온 빛이 단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반짝이는 붉은 빛의 눈동자는 저도 모르게 손이 갔다. 눈가를 만지는 손길에도 눈을 감지 않은 실험체는 홍안을 더욱 반짝이면서 연구원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게 사랑이야.”
낮게 울리는 말을 끝으로, 실험체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열이 높은 실험체의 한쪽 볼에 손바닥을 내어준 상태로 눈가를 만지작 거리는 연구원은 자신이 절대로 실험체의 결론에 긍정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답이라고 믿은 답을 오답이라고 처음 정의해 준 실험체의 결론에 부정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