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카구] 바나나 대소동
시무라 신파치, 16년 인생에서 제일 곤란한 일을 겪고 있습니다.
바나나 대소동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신파치가 가지고 온 오타에의 도시락을 바라보는 긴토키와 카구라의 얼굴이 굳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못할 짓을 한다는 듯 신파치의 얼굴이 복잡하게 뒤엉켰지만 그에게는 오타에를 이길 힘이 없었다. 도시락의 개봉마저도 카츠라가 장난삼아 가지고 온 장난감 폭탄을 취급할 때도 이렇게 진지하지 않았을 만큼 사뭇 진중한 분위기가 해결사에 내려앉았다. 대표로 나선 긴토키는 나이 타령을 하는 두 어린이가 불만스러워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만큼은 침묵을 유지했다.
‘으, 으아아악!!!’
‘긴상... 이건 평범한 도시락이라고요.’
‘평범? 펴엉버엄? 카구라야,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이게 평범하다는 쟤가 평범하지 않은거냐, 평범하지 않은 것을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평범하지 않은거냐?’
‘도시락이 제일 평범하지 않다, 해.’
‘...’
끄덕이는 신파치의 마지막 말이 더 가관이었다.
‘이거, 누님이 검사한답니다.’
카구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식성을 가진 제 식탐을 후회했고, 긴토키는 그저 태어난 것을 후회했고, 신파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오타에의 동생으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신파치로서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나서야 세 사람은 동시에 젓가락을 들었다. 이렇게 무거운 젓가락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도시락에 손을 뻗은 것은 카구라였다. 덜덜 떨면서 음식, 이었던 것을 집어든 카구라는 결국 손을 뻗었다.
‘기, 긴쨩, 도와달라, 해!’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대신 먹어주거나 그런거 못합니다? 긴상에게 그런 무리한 부탁해서는 안됩니다?’
‘그,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해...’
‘아니아니아니아니, 안된다고?’
‘원래는 그거 부탁하려고 했던거 아니다, 해! 내 입 좀 벌려줘라, 해... 도저히 내 힘으로 못하겠다, 해.’
마음이 놓였는지 긴토키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카구라의 머리와 턱을 잡고 벌렸다. 순순히 벌려지는 카구라의 입에는 한동안 비어있었다. 입이 벌려졌지만 제 손으로 넣기에는 힘들었는지, 머뭇거리는 시간은 길었다. 하지만 마주보고 앉은 신파치가 긴장으로 손바닥을 바짓춤에 문지르면서 땀을 닦자, 더 이상은 지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결심을 굳혔다.
‘우웨에에에에엑!’
‘카, 카구라!’
‘카구라쨔앙!’
‘나, 나 먼저 간다, 해... 뒤를 부탁, 한다, 해...’
‘카구라아아!’
‘카구라쨔아앙!’
‘깨꼬닥.’
마지막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신파치는 축 늘어진 채 자의로 눈을 뒤집어 깐 카구라를 바라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 다음은 자신이었다. 무책임하고 되먹지 못한 이 어른은 제 몫도 먹기 싫어 지금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게 분명했다. 제 누나의 걸작이니 먼저 먹으라, 책임 져라, 이런건 눈치 있게 버려야지, 등등을 들어가면서 순서를 미룰게 뻔했다. 아, 젠장. 아직 오츠우쨩의 한정 레어 카드 못얻었는데, 나 돈이 있었나?
‘궤에에에에에엑!!!’
‘신파치, 할 수 있다, 해! 더 들이 부우면 익숙해질거다, 해!’
‘그래, 너는 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취급이 너무 하신거 아닌가요...’
‘자, 다음은 긴쨩이다, 해! 고지가 눈앞이다, 해!’
‘고지는 무슨, 이제 코딱지 두 입이 파내졌는데.’
‘긴상... 오츠우쨩의 한정 레어 카드는... 옵션으로...’
‘뭐라는 거야. 카구라, 얘 입 벌려.’
옳지, 옳지. 희미한 눈 앞에서도 신파치는 굳건한 얼굴로 제 몸 위로 올라타는 긴토키의 형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꼼짝도 못하는 제 처지가 너무나도 서러웠고, 안경인것도 서러웠다. 아니, 안경은 왜?
“그래서, 이 꼴이 났다고요.”
“근데 그 논리라면 우리만 이래야 하는거 아니야? 왜 전 에도인들이 이렇게 된건데?”
“그, 그건... 저도 잘...”
“뭐냐, 해. 쓸모없는 안경이다, 해.”
“누가 안, 경이구나, 나...”
“안경이 말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독보적이다, 해.”
카구라의 위로되지 않는 위로에 신파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나 그 한숨이 다른 사람에게는 안경이 움직이면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일 뿐이었다. 귀신 들린 안경이라고 부숴지는 게 아닌것에 다행이어야 하는건가... 신파치는 울고 싶었다. 안경이라 울지 못했지만.
“뭐, 그거다 이거야. 일단 오타에를 만나서 따지자고.”
“누님께 찍소리도 못할 사람이... 근데 긴상은 왜 그렇게 되신거에요? 안드신거 아니에요?”
“아- 나도 안먹은 줄 알았는데 카구라가 먹여줬어.”
“근데도 멀쩡하시다니... 놀랍네요.”
“그거 그냥 목구멍에 빛의 속도로 쑤셔넣어서 맛도 못느끼고 그대로 내려간거다, 해.”
빛의 속도는 아니라고 깐족거리는 긴토키 뒤에서 아홉 개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푹신푹신하고 따땃해 보이는건 맞는데, 아니 그런데, 언제부터 누님의 음식에 이런 일이 생긴거지? 신파치의 질문은 나오지 못했다. 해결사에 가득 울리는 웅장한 카구라의 뱃고동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식사라는 주제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식사를 아직 못했네.”
“그러네요. 카구라쨩, 뭐 먹고 싶은거 있어?”
“...”
“카구라쨩?”
“...바, 바나나... 바나나가 먹고 싶다, 해.”
“바나나? 차고 많은것들 중에서 바나나? 고기가 아니라?”
“나도 모르겠다, 해... 갑자기 바나나가 막, 엄청, 으악 하고 먹고 싶어졌다, 해.”
“으악... 일단 마트에 가죠.”
“근데 신파치 너는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어... 그러게요.”
“안경이면 안경의 일을 하면 된다, 해.”
“어어, 카구라쨩? 으, 으아아, 아아악!”
“비명은, 가만히 있어라, 해!”
카구라의 코에 걸친 신파치는 죽고 싶을 만큼 쪽팔렸고, 그리고 편안했다. 정말 전생에 안경이었는지, 신파치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카구라의 임시 안경이 되는 일에 익숙해졌다. 겉모습만 안경이 되었는지, 카구라는 큰 무리 없이 해결사를 내려와 태연히 거리를 걸었다.
띄엄띄엄 긴토키와 신파치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걷는 카구라의 시선을 공유한 신파치는 중요한 사실을 한가지 더 알게 되었다. 카구라가 보는 시선으로 시야가 좁혀진 것뿐만 아니라 카구라의 시선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카구라는 바나나를 노래 부르면서도 다시마 초절임에 한눈을 팔기도 했고, 길거리 아저씨가 목청껏 홍보하는 오징어 튀김에도 한눈을 팔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땅콩 볶음에도 한눈을 팔고... 그냥 다 한눈을 팔았다.
카구라는 고양이 답게 사뿐사뿐 걸어, 신파치는 편안한 승차감에 만족할 수 있었다. 다만 어두컴컴한 뒷골목에 음식물이 터진 쓰레기 봉투라던가, 쥐라던가, 바퀴벌레라던가, 필요치 않은 부분까지 모두 보게 되어 신파치는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참아야 했다.
“오늘 세일인건가, 운이 좋았네.”
“긴쨩, 바나나 잔뜩 사자, 해!”
별말 없이 들어간 두 사람과 안경 하나는 바나나 많이와 긴토키가 원하는 생간의 한점을 집어들고, 신파치의 레코드 샵을 무시한 채 계산을 마쳤다. 긴토키의 꼬리는 이따끔 살랑이던 움직임이 지금만큼은 딱 멈추고 축 늘어져 있었다. 폭신한 여우 꼬리는 파칭코 가게를 보기 전까지 땅을 질질 끌면서 잔뜩 더러워졌다.
“얘들아 먼저 가 있어라.”
“긴상?”
“어이, 어딜 가려는 거냐, 해. 늦게 오면 바나나 없다, 해?”
“어어, 그럼그럼. 성장기에는 많이 먹어야지.”
“긴상... 저희 집에 아무것도 없어요.”
“간 있잖아.”
“간도 없을거다, 해.”
“...너 진짜...”
울 듯 얼굴을 찌푸리고 뒷머리를 벅벅 긁는 긴토키의 뒤에서 꼬리는 쉴새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초조함을 명백히 드러내는 그 태도에 카구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긴토키의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카구라의 꼬리 또한 두 개가 동시에 짜증을 부렸다. 땅에는 닿지 않았지만 각에 맞춰 허공에 탁탁 거리는 카구라의 두 꼬리는 점점 빨라지면서 강도가 세졌다.
백기를 든 것은 긴토키였다. 꼬리는 움직임을 멈추었지만 쳐지지는 않았다. 신파치는 그럼 그렇지, 라는 웃음을 피식 흘렸다.
“줘봐, 바나나. 생간을 여기서 먹을 수는 없지.”
“파칭코 갈거면 하나만 먹어라, 해.”
“하나로 배가 차겠냐~ 긴상도 배고프다고.”
“흥, 어차피 파칭코 가서 돈 다 날려먹을것이고 이번달 월급도 없을 것이고 밥도 이게 마지막일 게 뻔한데! 뭐가 이쁘다고 바나나를 주냐, 해. 애초에 바나나는 내가 먹고 싶어서 산거 아니냐, 해! 내. 가!”
“아- 그래그래, 알겠어, 알겠어. 일단 줘.”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듯 양손 가득 든 비닐봉지의 한쪽을 뒤져 바나나 한송이를 뚝 띄어서 건내는 행동이 무뚝뚝하다. 받아들이는 긴토키또한 공손하지 않았고, 그렇게 카구라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바나나가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몸을 앞으로 획 돌렸다. 파칭코에서 돈을 다 잃어서 장기까지 탈탈 털려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작은 결심이 만연한 얼굴이었다.
“우읍, 카구라, 이거 상한거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마다오. 싱싱하다고 신나서 고른 사람은 마다오가 아닌 마다오냐, 해?”
“아니, 킁, 욱, 이거 진짜... 아닌 것 같아. 다른거... 다른거 줘봐라.”
“다 똑같은 바나나다, 해. 먹기 싫으,”
카구라가 긴토키가 깐 바나나를 뺏어든 참이었다. 카구라의 곁을 지나가던 오니 두명이 갑자기 코를 쥐어틀더니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투덜거렸다.
“우읍, 이게 무슨 냄새야?”
“어휴, 냄새!”
“무슨 썩은 음식을 들고 다녀, 별꼴이야.”
코끝을 한번 찡그리면서 고개를 갸웃한 카구라에 의해 온몸이 들썩여진 신파치도 없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해결사 세명의 깐깐한 검사를 통과한 싱싱한 바나나들이었다. 그 중에서 이 짧은 시간에 상했을 리가 없는데, 의문이었다.
“우욱, 카구라, 이거 다 상했, 웨에에에에,”
“기, 긴쨩, 괜찮냐, 해!”
“아니 안괘애애애애액...”
“기, 긴쨩...”
“카구라쟝, 이거 뭔가 이상해.”
“응...?”
불안한 눈동자가 파칭코 입구에서 그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코를 막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요괴들을 담았다. 멀쩡한 자신이 이상한건지, 멀쩡하지 않은 사람들이 멀쩡하지 않은것인지, 신파치는 문득 인간이었을 때의 긴토키가 투덜거리던 헛소리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이런 떡밥 회수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랭성, 마잉냥.”
“우응...”
“에큐...”
코맹맹이 소리로 한숨을 푹 쉰 긴토키는 소파에 몸을 착 달라붙은 채 바나나를 입안에 쑤셔넣는 카구라를 빤히 쳐다봤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카구라를 해결사로 데려다 일단 재촉하듯 울리는 뱃고동부터 진정시키기 위해 바나나를 건넸다. 긴쨩은 어떡하냐, 바나나 맛있다, 왜 나만 이러냐, 이걸 못먹는 긴쨩이 불쌍하다 등등 입안 가득 바나나를 물고는 울먹이면서 웅얼대는 카구라의 말에 대충 장단 맞춰주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생물인 신파치를 제외하고, 카구라만이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을 긴토키는 고심 끝에 오타에의 물건 때문이라고 결론 지었다. 사실은 생간에 눈이 가지면서 급하게 지은 결론이었지만, 불안하게 바나나만을 먹고 있는 카구라에게 굳이 덧붙일 일은 아니었다. 슬금슬금 바나나에 집중하고 있을 틈을 타 생간을 덥썩 집어 한입 크게 배어먹던 긴토키는 어느 순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카구라와 안경의 시선에 그대로 몸을 굳혔다.
“아, 아니이... 이건, 그게 말이다...”
“신파치, 생간이 맛있냐, 해?”
“긴상은 구미호니까 생간이 맛있어 보이겠지?”
“맛있으려나...”
“카구라야? 너에게는 바나나가 있지만 나에게는 바나나가 없단다? 긴상의 음식을 뺏어먹지 말아줘.”
“뭐 긴쨩이 말한다면...”
안심하고 먹는게 화근이었다. 순식간에 손에 들린 생간을 해치운 긴토키는 손에 흘러내린 피를 빨아먹으면서 자신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에 감탄하고 있을 때, 일은 벌어졌다. 여전히 허기짐이 남아있자, 긴토키는 남은 마지막 생간을 향해 긴 손톱을 뻗었다. 잡히는 것은, 물컹하고 기분 나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그래 마치 바퀴벌레의 등에 손을 댄 것 같은 그 기분에 긴토키는 빽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말랑하고 부드러운 내 생간 어디갔어!
“카구라아아아!”
“긴쨩,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눈을 찡긋한 카구라의 몸이 훌쩍 뛰었다. 동시에 긴토키의 손이 카구라가 있던 자리를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허공을 갈랐다. 원래도 붉었던 홍안이 마치 빛을 받은 듯 번쩍이면서 긴토키의 긴 손톱이 더욱 길어졌다. 아홉 개의 꼬리는 털을 바짝 부푼 채 끝이 뾰족해졌고, 긴토키의 잇몸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 또한 날카로워졌다.
위기감을 느낀 것은 신파치만이 아니었다. 액자 위로 훌쩍 올라가 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카구라의 눈은 바나나 앞에 서 있는 긴토키에게 고정되었다. 액자의 불안정한 고정이 빠지기 직전, 긴토키가 한발 먼저 공격을 가했고, 카구라는 그대로 반대편의 작은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얇은 유리가 맥없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긴토키의 얼굴에 튀었고, 스친 상처에서 피가 몽글 났지만 긴토키는 아랑곳 안하고 카구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창틀에 손을 짚은 카구라가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 긴토키는 허공을 붙잡으면서 유리가 튄 바닥에 두 발을 짚어야 했다. 닿을 듯 말 듯 살랑거리는 꼬리는 순식간에 아래로 추락했고 긴토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천천히 유리조각을 밟으면서 창문 아래를 쳐다본 긴토키는 저 멀리 두 꼬리가 여유롭게 살랑거리면서 달려가는 카구라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헉, 헉... 아 배고프다, 해.”
“지금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럼 어떡하냐, 해. 급하게 나오느라 하나밖에 챙겨오지 못했다, 해.”
“챙겨온 너가 더 대단한데...”
우물거리면서 벤치에 늘어진 카구라는 두입만에 바나나를 먹고 천천히 입을 씹었다. 조금이라도 바나나를 느끼기 위해, 음미를 해 보려고 했지만 목은 바나나가 주는 부드러운 목넘김을 원한다는 듯 끊임없이 움직였고, 카구라는 채 열 번을 씹지 못하고 그대로 바나나를 삼켜버렸다. 아쉽다는 듯 쩝, 하고 입맛을 다신 카구라는 크게 기지개를 폈다. 으그그극~! 절로 앓는 소리를 내고 양 팔을 벤치 뒤로 젖힌 카구라는 눈을 감았다. 적당히 따스한 한가한 오후, 여전히 울리는 배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럭저럭 만족을 준 카구라의 입에서 절로 기분 좋은 흥얼거림이 새어나왔다.
“한가롭게 휘파람이 나오지, 엉?”
“불법 투기, 바나나 소지... 그리고 암퇘지여서 체포합니다~”
“하? 이거, 뭐, 너희, 하아?”
“순순히 따라오라고.”
양손에 채워진 차가운 수갑은 전혀 한가롭지 않았다. 입을 가린 채 안색이 퍼런 히지카타와 그저 즐거운 오키타 각각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두 남자에게 끌려가는 카구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악을 쓰면서 동행을 거부해 보지만, 텐구와 카마이타치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발을 구르고 몸을 크게 뒤척여도 꼼짝 없었다. 발악하는 도중에 신파치가 바닥에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안경의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땅바닥에서 누운 신파치는 카구라에게 파이팅을 소리 없이 외쳤다. 야토니까, 응!
“암퇘지는 더럽게도 무겁네.”
“돼지 아니다, 해! 내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부르고 싶냐, 해!”
“꼴에 고양이라고.”
고개를 팍 돌리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히지카타에게서 벗어난 카구라는 도망갈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시켜 준 다음에서야 수갑을 풀 수 있었다. 히지카타를 앞세워 둔소 식당으로 향한 카구라는 그제서야 자신이 이곳으로 연행된 이유를 물어봤다.
“나는 여기로 왜 왔냐, 해?”
“아까 소고가 말할 때 뭐 들었냐.”
“말이 안된다, 해! 나는 억울하다, 해!”
“너가 버린 바나나 껍질, 너가 버리기 몇분 전에 정부에서 공식으로 발표가 났어. 바나나를 소지하거나 거리에 버리면 불법이라고.”
“그런... 그런 법이 어디에 있냐, 해! 맛있는 바나나를 먹어도 불법인 것이냐, 해?”
“불법이라는 단어를 알긴 아네. 그래, 바나나가 맛있... 바나나를 먹는다고?”
“그러고 보니 긴쨩도 바나나를 못먹는다, 해.”
“당연하지. 이 모습이 되고 난 후부터 모두가 바나나를 못먹게 되었어. 전국에서 구토와 온몸의 두드러기 현상, 악취 등등 여러 현상들이 바나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다고. 너는... 괜찮은 것 같네.”
“이 맛있는 것을 못먹다니... 다들 불쌍하다, 해.”
“아니 하나도 불쌍하지 않으니까 일단 그... 웅장한 소리부터 잠재우고 들어가라.”
“진짜냐, 해! 토시가 짱이다, 해!”
가벼워진 발걸음은 자신이 법을 위반했고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사실은 꿈이었습니다, 라는 듯한 가벼움이었다. 두 꼬리 또한 가볍게 살랑였고 히지카타는 팔자 좋게 식당 문을 여는 카구라의 모습에 걱정이 섞인 얼굴로 바라봤다. 안좋은 버릇을 들인것인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카구라는 안색이 파랗게 질린 대원들을 마주했다. 저마다 코와 입을 들이막고 앞다투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덩치 있는 아저씨들의 쏠림에 제아무리 야토의 카구라라고 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뒤에서 히지카타가 재빨리 카구라를 옆으로 빼주지 않았다면 혼비백산 뛰쳐나오는 대원들에게 깔릴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리둥절하다는 얼굴로 한바탕 소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구라는 기어나오는 야마자키를 마지막으로 히지카타의 품에서 빠져나와 식당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카구라의 뒤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히지카타는 긴장한 채 몸속 깊이 흘러오는 악취에 반사적으로 코와 입을 막고 뒤로 물러갔다. 토시? 카구라는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던 히지카타의 뒷걸음질침에 고개를 돌려 히지카타를 바라봤다. 저와 안경을 제외한 모든 이들과 공통적으로 낯빛이 새파랗게 질린 히지카타는 힘겹게 숨을 내쉬면서 진정해보려 해 봤지만 순간 눈을 크게 뜨면서 한팔을 기대던 벽의 뒤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많이 아픈것인가, 카구라는 식당까지 안내해 준 히지카타의 작은 배려를 떠올리면서 다가가려던 찰나, 게걸스럽게 게워내는 히지카타의 토악질에 그대로 멈추었다. 바나나에 대한 거부반응이 여전히 어색할 따름이었다. 어차피 바나나 때문이라면, 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가 봐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충돌하던 찰나 히지카타가 힘없이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가서 먹, 우웨에에엑!”
“토, 토시이... 정말 괜찮은거냐, 해.”
“어어... 휴... 바나나 때문이니까, 너는 괜찮다면서. 바나나에도 괜찮으니까 들어가도 별일 없어.”
고개를 작게 끄덕인 카구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문을 닫아달라는 야마자키의 다 죽어가는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카구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보이는 많은 바나나들은 해결사의 거금을 들여 산 ‘많은’ 바나나들 보다 더, 더더, 아니 더더욱 많았다. 노란색 껍질이 마치 금처럼 빛나면서 카구라를 유혹했다. 이끌리듯 바나나 앞으로 간 카구라는 아플 정도로 울리는 공복에도 천천히 행동했다. 침은 이미 바나나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기대하다 못해 안달나 주체할 수 없었다. 침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카구라는 희열에 떨리는 손으로 바나나를 송이에서 땠다.
“이런, 차이나. 예절이 안되어 있네.”
“사, 사디?”
오키타는 식당 안에 있었다. 그러고보니 카구라는 식당 밖으로 우루루 나온 대원들 중에서 오키타를 보지 못했다. 바나나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오키타는 멀쩡했다. 놀라 우습게도 삑소리가 났다. 손목을 붙잡힌 카구라는 나쁜짓을 한 아이처럼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과 함께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가려고 했다. 하지만 오키타는 잡은 손목을 그대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카구라의 머릿속 또한 진정되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족, 두 번째는 그림의 떡이라니! 카구라는 미칠 지경이었다.
“남의 집에서 먹는 공짜 바나나인데, 의심은 안해봤어?”
“무슨, 의심...?”
“이 바나나가 과연 최고의 맛있는 바나나인가, 말이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카구라의 눈이 끔뻑이면서 맹하니 오키타를 바라봤다. 바나나는 바나나이고 바나나맛이 나는 다 똑같은 바나나이지, 바나나도 맛이 다른게 있나? 더 맛있는 바나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오키타는 활짝 웃었다. 반은 넘어왔다는 신호였다. 갑작스럽게 붙잡혀 놀라 펑해버린 꼬리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빠지면서 어느순간 차분하게 되돌아 와 있었다. 오키타는 라스트 한방을 준비했다. 최고의 타이밍에, 최고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이왕이면 최고의 결과도 나왔으면 좋을텐데. 오키타는 사망 플래그에도 살아남은 제 비교적 좋은 운에 맏긴 채, 카구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최고로 맛있는 바나나 아는데,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