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오키카구] 비, 밤, 그리고 벚꽃

우리_은하 2020. 4. 7. 01:30

 

1회 오키카구 전력 - 벚꽃 (@Okikagu_0905)<<<오키카구 존잘님들 연성 많이들 봐 주세요ㅠㅠㅠ 난 지금 봤다...

대대대대대대지각이지만 그래도 썼으니 올려봅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나보다.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서슬퍼런 칼은 다짜고짜 공격해 왔지만 카구라는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쓰고 있던 우산을 접어 무기로 바꿔 칼을 휘두른 방향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 평화로운 시기에 해가 기우는 시간에 예고도 없이 카구라를 공격할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더 막힘없었고 주저함이 없었다.

 

뭐냐, . 무슨 짓이냐, !”

 

노려보면서 정확하게 상대를 위협하는 카구라와 달리 기세 좋게 공격했던 상대는 카구라의 반응에 전의를 잃은 듯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지금쯤이면 벌써 두세번은 맞부딪히면서 치고 박고 싸워 주변 상인들로부터 한마디씩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키타는 오히려 들고 있던 검을 툭 떨구면서 고개를 휙 돌렸다. 카구라의 한쪽 눈썹이 찡그려지고 다른 쪽 눈썹이 확 올라가면서 오키타의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의문을 표하는 것을, 오키타는 눈을 흘기면서 빠짐없이 쳐다보았다.

 

, 쫄은 거냐, ?”

 

마치 기세만 좋은 어린아이를 눈앞에 두고 승리를 자처하는 어른처럼, 카구라는 더는 공격해 오지 않는 오키타를 향해 빈정거렸다. 한쪽 입꼬리를 쭉 끌어올리면서 비웃는 얼굴은 살짝 올려져 잔뜩 으스대는 꼴이었다. 이쯤에서 슬슬 받아쳐 줄 만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오히려 마음이 다급해진 것은 카구라였다. 진짜 오키타가 맞는지, 어쩌면 몰래카메라일 수도 있다고 온갖 생각이 빠르게 뒤엉키는 순간 오키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책임져.”

 

책임? 이 단어가 이렇게나 말문이 막히는 단어였나? 카구라는 대답 하지 못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자신이 오키타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지난주 구멍가게에서 오키타 이름으로 멋대로 외상을 단 일? 하지만 그건 긴토키가 급료를 밀려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고 급료를 받으면 갚으려고 했는데 아직 빈털터리 상태다. 아니면 이틀 전 벚꽃 나무 아래에서 자는 오키타한테 죽은 사람처럼 주변에 꽃을 장식한 일? 그치만 고릴라도 우리 소고 이쁘다면서 같이 웃었다. 고릴라도 공범이지, . ...아니면...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한 모습의 카구라를 보자 오키타는 복잡한 얼굴로 인상을 소소하게 찌푸렸다. 문자 그대로 화가 났지만 분노가 아닌 아리송한 혼란에 답답한 듯한 기색이었다. 복잡한 감정이 저를 향하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카구라야말로 답답함에 몸이 근질거렸다. 그냥 평소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이런 상황, 이런 기분, 원하지 않은 낯설음이었다.

 

뭔지는 짐작이 가냐?”

 

허탈한 웃음이 뒤를 이었다. 당연히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쯤 포기하고 별다른 기대 없이 툭 던진 말이었다. 그러니 지금 저가 얼굴에 띄운 바보 같은 미소가 눈앞에 보이는 붉은 치파오 뒷모습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가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이 믿기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카구라는 단 한 발자국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책임은 무엇인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데 그걸 물어보다니, 역시 치사하다는 생각을 끝으로 카구라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알고 싶은데 알 방법이 없으니 답은 하나였다. 젓가락질이 안된다면 포크질을 하면 된다고 마리 긴토키네뜨가 말했다. 모 아니면 도, 전혀 믿음직하지 않은 도박에 승부를 띄우기로 결심했다.

 

짐작이야 너무 잘 된다, ~! , 여기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여왕님께서 큰 인심 써서 말해주겠다, ! ...지난 화이트데이 때 사디 네가 주지도 않은 사탕 받았다고 거짓말했다, .”

장난하냐!!”

,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냐, !”

아니, ... 그게 포인트가 아니... ... , 받고... 아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다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이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돈도 복수도 아닌 거짓말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카구라는 이렇게까지 속마음을 내비추면서까지 짜증을 내는 오키타가 오랜만이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니잖아. 중얼거리는 오키타는 카구라가 눈을 반짝이면서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카구라가 어이없으면서도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이 나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화내다가 갑자기 웃으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방금 전 까지의 복잡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카구라가 털어놓은 그날의 진실이자 카구라가 제일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곱씹으면서 오키타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컥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토해냈다.

 

너 때문에 내가 이상하잖아!”

 

카구라의 귓속에 오키타의 마지막 단어가 메아리 치면서 울려 퍼졌다. 이상하잖아- 잖아- 잖아- - - -

! 무슨 말인지 이제 정말로 알 수 없다! 카구라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 의미 없는 말다툼이 지속되면서 뇌에 과부화가 온 카구라는 목 끝까지 올라온 짜증을 겨우겨우 삼켰다. 멀뚱히 서서 전혀 이어지지 않는 대화로 끝이 날까 초조해져 속에서 열불이 났다. 카구라는 무슨 일이든 오키타와 의미 없는 만남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유치한 손짓으로 상대를 약올리거나 표정으로 주의를 끌던가 여건이 된다면 몸싸움까지 번져 한바탕 뒹굴어도 좋았다. 결과야 어떻든 서로 모른척하며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사이는 절대 사양이었다.

 

“...무슨 소리냐, ?”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너 때문이라는 거야, 아 젠장! 멍청이 차이나 너 때문에 내가 이상하게 되었다고. 책임지라고, 이 짜증나는 여자!”

 

거친 숨을 내뱉는 오키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거, ? 카구라는 이왕 꿈이면 이 상황을 좀 더 만끽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을 놓쳐서는 안 된다. 흥분한 오키타와 차분한, 사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카구라의 조합은 카구라가 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조합이었다. 카구라가 눈을 뒤집어서 들어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비식 새어나오던 웃음이 오키타의 얼굴이 확 구겨짐과 동시에 크게 터져나왔다.

 

, 크흑, 크하하학! 사디, 뭐야, 크흡, 결국 하고싶었던 말이 결론이 나라는 거냐, ?”

...런 거지.”

끄하학학! 아이고 배야! 뭐냐, ! 정말 웃긴 치와와다, !”

여기서 더 웃으면 너를 베는 사람은 나다.”

푸흡, 크흐흐흡, 푸하하하!”

“...네 목을 칠 때는 손이 말을 듣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 허공에 바람을 한번 불어넣고, 카구라는 이전에도 들었던 대사를 이전에 했던 대사로 똑같이 받아쳤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비슷한 말을 한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고 이 상황에 아주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의미를 담아서 이 말을 할 줄이야. 그것도 눈앞의 에게 할 줄이야.

 

, 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구나, .”

 

언제나 동등하거나 가끔 엎치락 뒤치락 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카구라의 말에 완전히 굳어졌다. 얄밉게 씩 웃는 승리의 미소가 겨우 보이는 것이 다인 먼 거리에서 오키타는 입을 벙긋거리다 다시 다물었다. 한참을 뭐라 망설이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오키타의 이번에도 그저 벌어지기만 할 줄 알았던 입에서 자그만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러네.”

 

말없이 등을 보이면서 멀어졌던 이전의 상황과는 달랐다. 금세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던 예전의 카구라는 온데간데 없고 열 손가락을 힘없이 펼치고 나서야 카구라는 지금까지 제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은 꽤나 축축했고 긴장감에 발가락까지 기운이 쭉 빠지면서 눈을 강하게 감으면서 버텼다. 언제 질지 모르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저마다 눈에 힘을 줘 가면서 보는 상황에서 카구라 혼자만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눈을 꾹 감았다. 움직이지 않는 몸과 부정하지 않는 입은 눈과 다른 입장이지만 카구라는 그 어느 편을 들 수 없었다. 여전히 오키타의 생각을 알 수 없었고 카구라는 제가 던진 도박의 결과를 좀 더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가 보다.”

 

깨달음을 얻은 오키타의 혼잣말 같은 확신에 찬 대답에 카구라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기운이 쭉 빠진 이유도 있었지만 비정상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뛰어 귓가를 어지럽히던 심장이 뚝 멈췄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정적과 오키타, 그리고 저만이 남았을 때, 오키타의 첫 번째 긍정적인 대답에 벚꽃잎이 둘 사이에 휘날렸다. 오키타가 등지고 있던 벚꽃 나무는 제가 저 멀리까지 왕복하면서 나무 아래서 자고 있던 오키타 주변에 색색의 꽃을 가져다 장식하던 그 나무였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그토록 원하던 하나의 작은 맞물림인 것일까. 카구라는 그저 꽃잎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이 생각보다 날카로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이별을 준비하는 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잦아든 바람에 눈을 뜨자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로 눈앞에 보이는 오키타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

내 말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사디, 너무 가깝, ,”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겠다.”

가깝다, !!”

그렇다면 너는 나에게 푹 빠진 게 틀림없다고.”

 

빌어먹게도, 정답이었다.

 

, , 그리고 벚꽃

 

다음날 거짓말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는 이제 꽃놀이를 계획하는 해결사의 천장에서도 내렸다. 이제껏 밤에 술을 마시고 아침에 숙취로 고생한 것이 모두 술친구들의 제 꽃놀이를 방해하려는 속셈이었다고 외상으로 받아온 꽃놀이용 술병을 꼭 껴안은 긴토키가 한탄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친 신파치의 변명 같은 꽃놀이를 이제껏 가지 못한 이유를 듣던 카구라는 탁자 위의 과자를 오도독 씹었다.

 

그러고보니 카구라쨩은 어제 나간 유일한 사람이네? 어때, 벚꽃 예쁘게 폈지?”

아서라, 파치야. 뭘 안다고 쟤한테 물어보니. 보나마나 벚꽃을 보면서 봄 한정 벚꽃 모찌를 떠올렸을 거라고.”

 

대답 대신 오도독, 오도독, 과자를 씹는 소리로 대신한 카구라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긴토키와 신파치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주륵주륵 내리는 비만큼 카구라의 마음속에도 걱정이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3일이다. 평소와 같은 우스개소리로 한 소리에 진지한 답변을 한 오키타가 카부키쵸 거리는 물론이고 둔영에서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은지 3일이나 지났다. 그날 도망치듯 자리에서 벗어나 해결사로 돌아온 뒤 억지로 눈을 감아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뒤 여전히 몽롱한 상태와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는 심장과 가장 먼저 생각난 오키타라는 존재는 전날의 기억이 환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처음에는 몰래 훔쳐보려고 거리를 슬쩍 걸었다. 그날도 거리를 걷다 갑작스럽게 마주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겠지 하는 희망으로 사다하루 산책이라는 명분으로 거리를 설렁설렁 걸었다. 머릿속에 오키타 생각으로 가득 차서 그런가, 카구라는 해결사 긴쨩이라는 간판 아래로 다시 돌아왔을 때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제 머릿속을 점령한 오키타를 몰아냈다. 사다하루에게 이것저것 말도 걸고 보이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면서 바쁘게 다시 거리를 한바퀴 더 돌았을 때도, 해결사 긴쨩이 쓰여져 있는 간판 아래에 다다를 때까지 카구라를 불러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시 한 바퀴, 분노하면서 다시 한 바퀴, 체념하면서 다시 한 바퀴, 결국 부정적인 생각을 결론 지은 것이 여섯 바퀴 째 동네를 뱅글뱅글 돌고 난 뒤였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공복에 사다하루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붙어서 해결사로 돌아온 카구라는 밥 냄새에 코를 훌쩍였다. 밥통 안에 머리를 집어넣고 마지막 남은 밥풀을 핥아먹으면서 해결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단 한 번도 오키타를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을 되뇌면서 억지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봐, 결국 나는 네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데 성공했어.

벚꽃이 앙상한 가지들이 뻗어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흐드러지게 핀다면 더욱 빛이 나면서 비교의 대상이 된다. 카구라는 그날을 기점으로 평범했던 일상들이 초라한 나무들이고 지금 또한 흔한 잎사귀조차 피지 않은 나무라고 생각했다. 명백히 좋아한다고 긍정한 사람이 상대에게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은 것을 뭐라고 해석해야 좋을까, 카구라는 제멋대로 문제를 내고 제멋대로 답을 내렸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이거 나를 갖고 논 거지.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인 줄 알았건만 사실은 흩날리는 수십개의 벚꽃잎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아 착각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울하고 비참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오키타는 긍정하기만 했지 확실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전에 말한, 웃긴 치와와라는 표현에 긍정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웃긴 사람을 목표로 했다고, 어떤 년이 웃긴 사람이 좋다고 한거냐고, 도대체 왜 사람 헷갈리게 그런 말을 그 타이밍에 한 거냐고. 카구라는 자신도 모르게 과자를 살벌하게 씹었다. 콰득!

 

“..., 카구라야? 어디 아프니?”

아픈 게 아니고 화난 것 같은데요...? 카구라쨩, 뭐 안 좋은 일 있어? 그거 과자가 아니고 그릇이야.”

 

갈색 과자와 같은 색의 빈 그릇을 들고 와득와득 씹는 카구라는 이제껏 들리지 않았던 긴토키와 신파치의 말에 우뚝, 행동을 멈췄다. ,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입이 벌려지면서 후드득 떨어진 것은 입 안에서 침과 뒤섞인 갈색 나무 그릇 조각들이었다. 섬뜩하게 투두둑 떨어지는 소리에 신파치는 고개를 돌렸고 긴토키는 한숨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긴토키가 품에서 무언가를 뒤적였다. 그리고 카구라를 불렀다.

 

카구라, 카구라!”

 

무언가를 쥔 손을 쑥 내밀고 흔들면서 카구라를 부른 긴토키는 카구라가 영 올 생각을 하지 않자 결국 손을 펼쳐 내용물을 보여줬다. 옆에서 고개를 자라처럼 쭉 빼고 구경하던 신파치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면서 고음을 빽 질렀다.

 

긴상?! 돈 있으셨어요?”

소리가 크다, 파치야.”

무려 천엔! 긴상 오늘도 돈 없다고 저희 집에서 세끼를 해결하셨잖아요! 오늘은 누님도 눈치를 엄청 줬다고요!”

안경이 잘 버텨줬잖니? 그보다 잘 보라고.”

 

츳코미를 걸 사항은 많지만 투덜거리면서 얌전히 긴토키가 가리킨 손가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신파치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뭘 보라는 거지? 카구라쨩밖에 없는데?

 

카구라쨩이요?”

그래. 저 굶주린 야토족 말이다.”

“...”

배가 고파서 그릇을 씹어먹는 야토가 배고프다고 내 팔을 씹어먹지 않을 확률은?”

“...제로는 아니죠.”

그렇지! 그럼 다시 질문한다. 천엔과 야토족에게 팔이 뜯겨나가 병원에 실려가서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어?”

“...천엔, 아니 마치 처음부터 의도한 것처럼 당당하게 말하지 말라고요!”

아무튼, 너도 납득하는 이유잖아? 카구라, 팔 떨어지겠다! 안받아 갈거냐?”

“...누가 안받겠다고 했냐, .”

 

그제서야 입을 삐죽 내밀고 몸을 묻고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잽싸게 긴토키의 손 위에 올려진 천엔을 확 뺏어갔다. 손을 내밀면서부터 손에서 천엔이 빠져나가고도 가늘게 덜덜 떨리는 손은 배고픈 야토족에 대한 두려움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괘씸한 동시에 안쓰럽게 긴토키를 쳐다보던 신파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어있는 손을 가슴깨로 가져다가 한동안 공허한 주먹을 달래던 긴토키는 제 앞에서 멀뚱하게 서 있는 카구라를 향해 톡 쏘았다.

 

뭐냐, 너 설마 돈 쓰는 법도 알려줘야 하냐?”

, 아니다, ...”

근데 왜이래. 그러고 보니 너 좀 이상하다? 기운도 없어보... 이건 배가 고파서 그런 것 같고. 어디 섭섭한 일 있었냐?”

정말, 카구라쨩 안 좋은 일 있었어?”

 

둔해빠진 두 남자의 지적을 받을줄은 몰랐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뒤로 한발자국, 두발자국, 천천히 물러나던 카구라는 결국 몸을 휙 돌려 후다닥 해결사를 빠져나갔다. 우당탕탕, 벽에 찧이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나갔다가 봄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그냥 나갔는지 급하게 문이 다시 열리더니 약간의 소란이 추가된 이후에야 해결사에는 평화의 정적이 찾아왔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허전한 손을 괜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긴토키와 문을 닫지 않고 나가버린 카구라의 뒤처리를 처리하는 신파치만이 남았다. 이상한 카구라의 행동에 대해서 두 남자가 그 이후로 언급하는 일은 없었다.

 

, , 그리고 벚꽃

 

우산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진동을 일으키며 카구라의 세계도 같이 떨렸다. 눈앞이 떨렸고 바닥도 떨렸으며 몸도 떨렸다. 우산 손잡이를 잡고있는 손이 떠는 이유는 눈앞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뱃속을 진동하는 공복에 소소한 인상을 찌푸리니 기운이 쭉 빠졌다. 그 난리를 치고 비를 뚫고 왔건만, 문은 닫혀 있었다. 카구라는 자신이 처음에 왜 우산을 놓고 나갔는지, 뒤에서 작게 들려오는 위험하지 않냐, 야토인데 뭔 걱정이냐, 등의 신파치와 긴토키의 대화를 어렴풋이 들려온 것을 완전히 잊은 채 괜히 신발코를 바닥에 쿡쿡 찌르면서 짜증을 표했다. 그새 배가 꺼져서 그런지 힘은 하나도 없었고 이미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주머니 안에서 더 구겨질 천엔은 결국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돈이 있어도 스콘부는커녕 옥수수 스프조차 사먹지 못하는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 사이로 카구라의 혼잣말이 가느다랗게 갈라지면서 바닥에 떨어지면서 형체를 잃고 사라졌다. 홀린 듯 내뱉은 혼잣말을 끝으로 그대로 몸을 돌린 카구라는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임신으로 인해 20시 이후로는 문을 닫는 구멍가게가 문을 굳게 닫은 채 텅 빈 거리를 뜀박질 하는 카구라를 묵묵히 배웅했다. 외상은 좋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가게는 그렇게 말했다.

 

“...조용하다, .”

 

도착한 신센구미 둔영은 그 흔한 불빛조차 새어나오지 않은 채 어둠이 내려앉은 듯 어두컴컴했다.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둔영 앞 대문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카구라는 머리를 재빨리 굴려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 훌쩍, 신센구미 담을 넘었다. 히지카타는 물론 그 순한 야마자키까지 기겁을 하면서 말릴 일이겠지만, 카구라는 잠자리에 들 시간을 제외하고는 적막한 해결사에 있어 본 적이 없었기에 신센구미에 깔린 조용함을 깨고 차마 대문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가볍게 몸을 놀려 신센구미 둔영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금녀의 공간, 사실 대원들에게만 해당되는지 카구라는 몇 번 들락날락 했건만 밤에 몰래 들어오는 것은 처음인지라 떨리는 마음이 드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해결사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걷는 카구라의 뒤로 오토세가 뒷목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좀 이렇게 조용히 다니면 얼마나 좋아! , 그 말을 들을 카구라가 아니었지만.

둔영 한 바퀴를 뺑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도 카구라는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저 산책하듯 둔영을 돌기만 했다는 점에서 카구라는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언제 순찰을 도는 대원과 마주해 곤란해질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그 방을 찾아야 했다. 머리를 굴리던 카구라는 양 옆 담 너머로 크게 자란 나무를 발견하고 그대로 꾸물꾸물 올라갔다. 이제까지 지나온 모든 방들에 손가락을 밀어넣어 만든 구멍으로 방 주인을 확인했건만, 카구라가 찾는 오키타는 없었다. 어쩌면 숨겨진 방이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은 헛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과 함께 들었지만 3일 내내 흔한 우연조차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카구라는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 우산이 걸리적거려 바닥에 내팽개쳤다. 봄비에 나무가 미끄러져 카구라도 오르는데 애를 먹었다. 나무에 오르자 그제서야 보이는 창문에 나무 타는 것을 멈춘 카구라는 튼튼해 보이는 가지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뭐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이게 다 사람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홀라당 사라져버린 오키타 탓이다. 카구라는 괜한 울컥함에 가지를 꺾어 창문으로 힘껏 던졌다.

 

누구야, 이 밤중에.”

 

퉁명스러운 목소리,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창문 너머로 흘러 나왔다. 창문이 벌컥 열리면서 상체 절반을 붕대로 칭칭 감은 오키타가 상의를 탈의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마주치고, 봄비가 추적추적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창문 가까이에 놓인 종이가 조금씩 얼룩을 만들어내면서 젖어 들어갔다.

 

차이나... -”

사디, 이 개자식아--!!!”

, 야야, 잠시만! 나 환자, 붕대 안 보이냐, 이 무식한 여자가!”

 

눈에 보이는 것은 얄미운 오키타지, 부상당한 오키타가 아니었다. 의미를 담았지만 장난으로 포장한 말에 진지한 얼굴로 응한 오키타의 부재는 카구라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짧았다면 짧았던 3일의 부재동안 카구라는 수십, 수백번은 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진심이었다가 다시 사실은 아니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지치고 또 지쳤다. 뭐라 말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이별을 먼저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카구라는 3일전 오키타가 보여줬던 복잡한 얼굴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마음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오키타를 무작정 찾았다. 거리에서 단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는데 둔영에 있을 확률은? 이 천엔이 갑자기 만엔이 될 확률이었다. 한치를 알 수 없는 도박에 건 카구라는 제 아래에서 갑작스러운 덥침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오키타를 일단, 껴안았다.

 

“...차이나?”

어디 있었냐, .”

“...”

, 그렇게 3일 내내 안 보이는건 치사하다, ...”

너 설마... 울어?”

대답해라, !”

 

토닥토닥, 오랜만에 보는 카구라의 얼굴을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곧바로 서운함과 분노로 덮어 씌워진 것을 끝으로 보지 못한 채 달래줘야 하는 게 조금 아쉽건만, 오키타는 허전했던 제 품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카구라를 마주 안았다. 등을 천천히 다독이면서 몸을 일으킨 오키타 때문에 카구라는 더욱 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뜨끈한 몸과 봄비에 젖은 서늘한 몸이 맞닿으면서 딱 적절한 온도가 만들어졌다. 36.5, 두 사람이 만나야지 비로소 제 온도를 찾아갔다.

 

찾았네. 그렇지?”

, 대답할 의무는 없다, .”

아야야... 너무 세게 조이지는 말고. ...부슈에서 양이지사 잔당들이 모여 있다는 전보를 받고 응원 나간거야. 부슈는... 특별한 곳이니까.”

특별한 곳...”

이야, 그래도 차이나가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제 페이스를 잃을 줄이야. 그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웃냐? 지금 이게 웃기냐, ?”

 

서둘러 카구라를 안고있던 왼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미소를 숨기지만 카구라는 오키타의 옆구리를 콱 꼬집으면서 한번 시작한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편지 한 통도 안쓰고 가냐, 다친 건 역시 약해서 그렇다, 내가 곁에 있어야 적어도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 말, 책임져라, .”

어디서 들어본 말을 따라하네.”

책임지라고! 뭘 책임지라는 지 아냐, ?”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라하고 있잖아, 이 여자. 오키타는 허리에 들어간 힘을 살짝 빼면서 턱을 카구라 어깨에 올린 채 중얼거렸다. 빨리 말하라고! 사실 다친 곳은 등이라는 것을 아는지 카구라는 정확히 상처 부위 정중앙을 찰싹 때리면서 대답을 강요했다. 하나도 귀엽지 않은 건 분명했지만,

 

내가 너를 좋아하는걸 말하... , 설마...”

이제 됐다, . 나 나갈, 비켜라, ! 나 이제 갈거다, !”

이 말이 듣고 싶었던거야? 내가 너를 좋아하다고 직접 말하는거를?”

놓으라고 했다, !”

 

이거 어떡하지. 오키타는 저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버둥거리는 카구라를 품에 꽉 끌어안고 놓지 않은 채 완전히 얼굴을 어깨에 파묻었다. 언젠가 마음이 맞는 남녀의 사랑이 결국 이어지지 못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칼이나 휘두르는 사람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해 그 여자가 그저 행복해지길 바란다면서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빌며 떠난 남자를 오키타는 알고 있다. 그 사람 곁에서 시작과 끝을 본 오키타는 눈을 감으려고 했다.

 

누님, 만약 지옥이 있다면 제가 그곳으로 갈터이니... 칼이나 휘두르는 제 곁에서 같이 주먹을 휘두를 이 여자의 행복에 함께해도 되겠죠?

 

그렇게 믿지 못했냐?”

, , 뭐를...”

좋아한다는 이 말 한마디를 내 입에서 듣지 못해서 불안했냐고 묻잖아, 멍청아.”

아닌데?”

삑사리 났다. 부정하지 마. 애써 만든 분위기 깨지 말고.”

깨는 것은 너다, . 3일간 잠적한 망할 사디.”

망할 여자, 애써 큰맘 먹고 고백했건만 알아듣지도 못하고 자기 말만 기억하고 오해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두근두근, 심장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정상 속도를 유지하면서 뛰고 있었다. 안정되는 마음과 함께 긴장이 쭉 빠지면서 오키타 어깨에 얼굴을 기댄 카구라가 중얼거렸다.

 

“...비가 오고 있다, .”

비 내리는 밤에 핀 벚꽃이 절정이라는데.”

누굴 얼라로 보나...”

 

피식, 웃으면서 나른하게 감기는 눈꺼풀 아래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오키타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맞닿아 있으면서 느끼는 안정감에 취해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벚꽃과 함께 보는 것이 더욱 좋다는 생각에 카구라는 느릿느릿, 고개를 부비면서 까무룩 잠에 빠졌다.

 

, , 그리고 벚꽃

 

어라~ 이게 누구신가. 에도의 공기가 탁해진 건 도둑들이 돌아와서인가~?”

제대로 공무 수행하고 왔다, 만연 백수놈아. 빈털터리 망할 사장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만.”

 

담배를 피면서 여유롭게 받아친 히지카타를 흘겨본 긴토키는 카구라에게 살짝 몸을 틀어 다급하게 물었다.

 

! 이번에 제대로 돈 줬다고? 그치 카구라야?”

천엔으로는 사다하루 간식도 사지 못한다, .”

아니, 내가 천엔만 주긴, 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대답하면 안되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신파치와 그럼 그렇지, 여유로운 미소로 승리를 확신한 히지카타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억울하다고 소리지르는 긴토키 옆에서 무심하게 코를 파던 카구라는 히지카타 옆에서 삐딱하게 서 있는 오키타와 눈이 마주치자 켁,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코를 파던 검지를 빼고 중지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을 마주 들어 올린 오키타의 얼굴 또한 좋지는 않았다. 험악해지려는 두 아이 옆에서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두 어른이 유치해지기 직전, 겨우 중재에 성공한 신파치는 긴토키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히지카타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은 신파치에게 붙들려 끌려가는 도중에도 끝까지 입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긴토키에게 지지 않고 히지카타가 맞받아치자 오키타는 중지를 들고 있던 카구라의 손목을 붙잡고 히지카타 뒤로 이끌었다. 서로에게 악담을 퍼붓느라 정신이 팔린 히지카타는 등 뒤로 방금까지 죽일 듯 서로를 노려보던 두 아이가 나란히 붙어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바람이 적당하게 불면서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오키타는 그대로 카구라에게 입을 맞추었다. 까치발을 들어 오키타와 키차이를 좁히면서 입을 급하게 벌린 카구라의 입 안으로 말캉한 혀가 비집고 들어왔다. 재빠르게 입 안 구석구석을 핥으면서도 카구라가 느끼는 입천장과 혀의 뒷부분만큼은 느릿하게 자극을 줘 붙잡힌 제복 겉옷이 카구라 쪽으로 당겨지는 것을 느낀 오키타는 싱긋, 두 눈을 곱게 휘었다. , 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을 가득 품은 채 입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떨어졌다. 아쉽다는 얼굴을 가득 품은 채 오키타를 바라보던 카구라는 오키타가 고개를 숙여 짧은 버드키스를 해주고 난 뒤에야 몸을 돌려 아무렇지 않게 신파치와 긴토키를 쫓아갔다. 등 뒤로 손을 숨기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카구라의 얼굴을 감싼 채 입을 맞추었던 그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오키타는 주먹을 살며시 말아쥐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는 그치고, 마지막 남은 벚꽃이 끝무렵에 더욱 아름답게 피면서 두 사람을 화려하게 빛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