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카구오키] 비참
리퀘박스에 올려진 내용을 토대로 썼습니다! 좋은 리퀘 감사해요~!
항상 오키카구 위주로 쓰다보니까... 긴카구는 각잡고 쓴게 처음인지라...(변명
긴>><<카구<<<<오키타 를 전제로 쓴 것인데 잘 표현이 되었는지...
좋은 리퀘였지만 결과물이 이러네요... 죄송합니다...
사람이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어느 순간일까. 카구라는 턱을 괴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거리는 곱슬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비참한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장 끝에서 저 끝까지 순식간에 달려간 그는 눈앞에 굴러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뻥 찼고, 승리했다. 모여드는 같은 팀원들의 축하와 응원을 받으면서 웃는 그는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실은 은발이 햇빛에 반사되어서 반짝이는건데.”
“...으헉! 깜짝이야!!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해.”
“너가 입을 헤 벌리고 정신없이 형씨를 바라보고 있을 때부터. 그렇게 점심을 먹고도 모잘랐냐, 돼지?”
“이, 입을 벌리고 본 것은 아니다, 해...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이 없어, 맞는 말이.”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는 카구라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오키타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러다 문득, 소란스러운 아래에 카구라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밀어내면서 창가에 선 오키타는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있는 무리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반짝이는 머리를, 아니 어쩌면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은 카구라가 푹 빠져있는 요주의 인물이 중심에 서서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미미하게 눈썹을 찌푸린 오키타는 카구라의 얼굴에서 손을 뗌과 동시에 겨드랑이 아래로 머리를 밀어넣었다.
“뭐하는 짓이냐, 해! 이 도에스!!”
“어이쿠, 담임이 널 부르는 걸 깜빡 잊어서. 너, 아직도 부활동 안정했다면서? 벌써 6월이야, 6월.”
“...나 여기 온지 한달도 안됐다, 해.”
“그러니까 누가 늦게 전학 오래? 늦을수록 빨리 내야지. 너 이번에도 안내면 진짜 집에 못갈수도 있어?”
“엑, 그건 싫다, 해! 그런건 빨리빨리 말해라, 해!”
질질 카구라를 거의 끌다시피 반에서 나가는 오키타는 힐끔 뒤편의 창가를 바라보았다. 이전까지 둘이서 한폭의 그림마냥 서 있었던 그 자리였지만 탐탁치 않은 표졍으로 노려보는 오키타는 학교를 샅샅이 뒤지면서 카구라를 찾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목적, 전혀 다른 풍경을 담고 있는 두 사람을 억지로 잘라 붙여놓은 듯한 불쾌하고도 짜증나는 장소. 오키타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운동장에서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을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을 살짝 후회하며 고개를 돌렸다.
“긴토키, 거기 누구 있어?”
“뭐? 어디, 어디?”
“어... 아냐, 아무것도. 내가 착각했나봐.”
싱겁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한귀로 흘리면서 긴토키는 자꾸만 시선이 가는 창가를 올려다보면서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었다. 분명히 시선을 느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시선은 때때로 끈질겨서 귀찮게 굴 때도 있지만,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순수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누구야? 누구길래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왜 나서지 않는 거야?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어. 그 갈색머리 남자아이, 그는 아니라는 것을.
“신입 부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임시 부원.”
“잘 부탁한다, 해! 카구라다, 해.”
첫인상은 그래, 밝고 통통 튀는 어느 여고생과 다를 게 없었다. 노을을 연상시키는 주홍빛 코랄 머리카락을 한 소녀는 만두 머리를 한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첫 만남에서 악수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긴토키는 어색하게 어정쩡한 자세로 악수를 받았다. 손은 작고, 부드럽고, 또 뜨거웠다. 몸 안 가득 열기를 가득한 아이인가, 싶을 정도로 뜨거움이 인상 깊었다.
“아직 신입이라서 벤치에만 있을거야. 임시니까, 체험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다가오겠지? 자, 몸풀기 했어? 농땡이 피우지 말라고 했지!”
코치의 우렁찬 울림에 이미 준비운동까지 마친 긴토키는 서둘러 준비운동을 시작하는 부원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검도를 집으려고 했다. 작은 손이 제 앞을 가로막기 전까지.
“...뭐야?”
“준비운동도 안하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코치가 말했다, 해.”
“나는 준비운동을-”
“안다, 해. 혼자는 외롭지? 같이 하자, 해!”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라고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이 바로 옆에 철푸덕 앉아 스트레칭을 시작한 직진 후배에 그냥 삼켰다. 이런 타입은 귀찮고 나만 피곤해져. 긴토키는 죽도를 다시 내려놓고 천천히 카구라를 따라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검도부 준비운동이라 해봤자 자율적으로 몸을 푸는 일이라, 긴토키는 허리를 숙이자 이미 러닝으로 준비운동을 끝낸 제 몸에서 훅 풍겨오는 땀 냄새에 콧잔등을 잔뜩 찌푸리면서 슬쩍 카구라를 바라보았다. 땀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 시선을 느끼자 눈을 맞춰왔다. 체육관 안이 시끌벅쩍해지면서 들리지 않은 것인지, 처음부터 입모양으로 했는지 긴토키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입을 달싹이는 카구라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도 한참 놓친 지난 질문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긴토키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카구라의 검도부 체험은 그 이후 별거 없었다. 자신도 준비운동을 마쳤으니 합류하겠다고 주장한 카구라가 휘두른 죽도에 우수수 떨어져나간 부원들이 큰 부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별다른 사건 없이 끝난 것이었다. 저 멀리서 악연으로 맺어진 친구들의 별 의미없는 농구를 벤치에 앉아 물을 들고 있는 긴토키는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물 다 흘리는데요.”
“...엇, 어, 어! 정말이네.”
허둥지둥 페트병의 뚜껑을 잠그는 긴토키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오키타는 말도 없이 옆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누구 것인지 모르는 교복들이 어수선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흙에 나뒹굴었다. 엉망진창 농구를 하는 친구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을 확인한 긴토키는 왼편에 있는 제 교복을 슬며시 쥐었다. 이거 어제 세탁했단 말이다.
“그래서, 새 부원은 맞이할 건가요?”
“그... 누구더라?”
“소고입니다. 오키타 소고, 2학년, 선도부원이라고요. 선배 매일 잡는.”
“아, 아! 내 원수 아닌가!”
아하하! 웃으면서 등을 내리치는 긴토키의 손바닥에 조금 담긴 진심에 오키타는 눈을 찌푸렸다. 가볍고, 또 가볍다. 어디로 날아갈지도 모르고 고여있지도 않는 사람. 애초에 줄 생각도 없고 주고 싶지도 않은 카구라를 향한 애정을 이런 남자가 독차지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다.
“걔, 원래 그럽니다.”
“...응? 뭐가? 누구?”
“흥미로워 보이는 것에 달려드는 것도, 집요하게 놓지 않는 것도, 끝을 봐야하는 것도 모두 원래, 모두에게 그러는거라고요.”
“잠깐, 대화를 못따라가겠...”
“그러니까 그 호의, 그 시선, 그 어떤 것도 착각하지 말라고요.”
“...”
“제 것입니다.”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섬찟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자는 오키타만이 아니었다. 긴토키는 적대감 가득한 눈동자를 받아내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충 대답을 해서 영문도 모를 말을 늘어놓는 건방진 후배를 떼어놓으면 되는 일이건만, 긴토키는 운동장에서 끈질긴 시선 끝에서 오키타를 봤던 지난날처럼, 떼어지지 않는 입을 더욱 닫았다. 끝까지 지켜봤다면 오키타가 아닌 정말 자신이 찾았던 시선의 주인공을 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 시선의 끝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것은 한번이면 족했다.
“젠장...”
“긴쨩? 왜그러냐, 해?”
“...우리가 언제부터 긴쨩, 카쨩이라고 부를 사이가 되었냐?”
“앗, 긴쨩, 나를 카쨩이라고 부르고 싶은거냐, 해? 그런거냐, 해?”
필요 이상으로 격양된 카구라의 목소리를 피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긴토키를 막아선 카구라는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턱을 들었다. 긴토키의 어이없다는 표정마저 좋았다. 완벽한 그림처럼 보일 두 사람의 모습을 누군가가 보는 것을 상상하니 카구라는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좋아, 정말 좋아.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해! 그보다, 정말 카쨩이 좋은거냐, 해?”
“나는 아니라고 했다.”
“체엣, 그래도 나는 긴쨩이라고 부를거다, 해.”
“누구 마음대-”
“쉿, 여기 도서관이다, 해.”
도서관이지. 암. 사서 선생님도, 도서부원도 모두 자리를 비운 방과후 아무도 없는 도서관. 방금까지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라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놓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긴토키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애칭이라고 멋대로 생각한 것은 절대로 점심시간에 오키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어린아이 같은 고집은, 쇼요가 항상 주의하던 긴토키의 버릇 중 하나였다.
“카구라.”
“으, 응? 긴쨩? 왜그러냐, 해?”
“...”
긴쨩, 긴쨩, 긴쨩. 되돌아보면 카구라는 검도부를 견학하고 복도 등에서 긴토키를 마주할 때마다 긴토키를 그렇게 불렀다. 해맑게 웃으면서 여전히 뜨거운 손바닥을 제 몸 어딘가에 붙이면서. 그렇게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을 보지 않았지만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이름을 지우고, 얼굴을 지우고 다른 사람의 것을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쇼요는 항상 말했다. 어릴때부터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지냈기에 경쟁이 심했고 질투도 심했고 오롯이 자신에게 가는 애정을 갈구하는 면이 있다고, 그것은 우정이든 애정이든 상대에게 못할 짓이라고.
“내가 부르면... 대답해 줄거야?”
“긴쨩?”
고개를 갸웃한 카구라의 눈동자에 비춰진 제 모습을 보면서도 긴토키는 만족하지 못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시선. 뜨거운... 열기. 그리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긴쨩이 부르지 않아도, 질문하지 않아도 질리도록 대답할 것이다, 해!”
그때의 웃음이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주변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넓은 체육관에서 둘만이 남은 채 입을 움직이는 카구라에게 온전히 집중했으면서 대답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고민했던 그때였다. 늦어도 한참 늦은 질문의 답을 내린 긴토키는 질문을 집어 던지고 카구라를 따라 웃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 모두가 온전한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긴토키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차, 아니 카구라는?”
“카구라쨩이라면 양호실에 가던데?”
“양호실? 아까까지 멀쩡하지 않았어?”
“모르지, 뭐. 아, 근데 그 선배도 같이 있던데.”
양호 선생님이 하필이면 없을게 뭐람. 요란하게 들어왔음에도 기척 하나 없는 양호실을 노려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총 세 개의 침대 중 첫 번째 침대에 드리워진 커튼을 거칠게 연 오키타의 주먹이 힘없이 풀렸다. 정돈된 침대는 하루종일 아무도 이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학 온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곁을 멤돌았기에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그래, 세 번째 침대에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소녀의 존재를 오키타는 짐작했다. 잊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기억 속에 담아둔 모든 정보가 누군가에게 훔쳐진 이 느낌. 오키타는 두 번째 침대를 건너뛰고 천천히, 세 번째 침대로 다가갔다.
“쉿, 자고 있어.”
“...그정도야 저도 압니다만.”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얼굴이길래, 무심코.”
어깨를 으쓱이는 가벼운 모습, 여유로운 표정, 무엇보다 보란 듯이 붙잡고 있는 카구라의 손은 보고싶지 않아도 보였다. 눈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었다. 주변에서 의아할 정도로 주변을 멤돌았는데 하루아침에 저절로 눈에 안들어온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담겨지는 것을 오키타는 조절할 수 없었다.
“변덕이라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요, 선배.”
“선배라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단어일줄은 처음 알았는데.”
“대답, 해주시죠.”
“...”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하게,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채 똑바로 마주하는 시선을 힘겹게 받아낸 오키타는 다시 한번 파란머리 천사에게서 멀어졌다. 집에 가면 누님이 코가 길어졌다고 놀리는 거 아닐까. 행복해지지 못하는 거 아닐까. 피노키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더라. 오키타의 눈동자가 느리게 감겼다 떠졌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이 다음장으로 넘겨진 것처럼, 커다란 긴토키 손 안에 완전히 가려진 카구라의 손은 어느새 긴토키의 입에 닿고 있었다. 오키타의 입술이 비죽 올라갔다.
“선배는 결국 얻지 못할 것입니다.”
겁쟁이.
“제 것이니까요. 착각하지 마시죠.”
거짓말쟁이.
“...끝났냐?”
“선배가 끝나면 저도 끝납니다. 실례.”
단정한 얼굴이 다정한 애정을 듬뿍 담은 채 카구라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영악하게도, 오키타는 긴토키의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카구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정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상냥하고 조심스러웠다. 진짜, 연인처럼.
“일어나, 차이나. 수업 종 울리겠어.”
“으음... 누구... 으엑.”
“으엑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건 인정하겠다, 해. 미안하다, 해. 웩!!”
“차이나...”
“아하하하, 미안, 미안하다, 해. 진짜로! 지금 몇시길래... 헉, 서서서서, 선배!”
“...잘 잤어?”
화르륵 붉어지는 얼굴도, 미지근한 정상 체온이었던 손도 갑자기 느껴지는 열기도 모두 변덕이라는 것이. 양호실에서 자고 있는 카구라를 발견하고 슬쩍 손을 잡은 사람이 저가 아니라 어떤 그 누구라도, 오키타라도, 같았을 것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긴토키의 눈을 환하게 휘게 만들었다. 긴토키와 함께 있으면서 반달같은 눈웃음을 처음 본 카구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긴토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종소리가 외쳤다. 아니야, 아니야. 그거 아니야.
“헉 진짜로 수업 종이 쳤다, 해! 우리 다음 교시 뭐냐, 해?”
“수학. 히지카타가 늦으면 벌점이라고 했고, 차이나 넌...”
“으아아!! 한번 더 받으면 방과 후 청소 확정이다, 해!!”
쑥 빠지는 손과 열기,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수줍은 얼굴에 미련을 뚝뚝 흘리면서 카구라의 뒤를 쫓는 시선을 본 것은 또 오키타였다. 또였다. 긴토키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면서 애써 만든 웃음을 유지했다. 언제 돌아볼지 모르는 카구라에게 보이고 싶은 것은 완벽한 이상적인 선배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볼품없이 질투에 휩쓸려 무너진 표정 따윈 카구라도 원하지 않을 것이니까. 보란 듯이 카구라의 어깨에 손을 올린 오키타가 카구라에게 속삭였다. 속삭였다라는 표현이 웃긴 것이, 시선은 긴토키에 두고 카구라의 귓가에 긴토키조차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뭐 어때, 이번에도 내가 도와주면 되지.”
“정말이냐, 해!”
“그럼. 둘이서 청소도 하고, 타코야키도 먹으면서 집에 가는 거지. 아, 자전거 태워줄까?”
“진짜냐, 해! 이게-”
끊긴 대화의 뒷내용을 감히 상상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카구라를 독차지할까 두려워 긴토키는 애써 웃음을 유지하면서 정신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다정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자신은 알지 못하는, 절대 알 수 없는 둘만의 이야기를 하는 두사람의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타카스기가 본다면 사서 고생을 한다고 비웃을 일이지만, 긴토키는 멈추지 못했다. 지금 멈춘다면 분명 비참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계시나요? 어라, 아무도 없, 헉! 사, 사카타?”
“...아.”
“뭐야~ 수업종 울렸는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선생님도 안계시는데.”
“잠시... 이제 갈려고 했어.”
“...근데 너, 싸웠니?”
“어?”
“너 얼굴 지금 엄청나... 누구 하나 반죽음 만들기 직전 같은데?”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듯 가만히 동급생을 빤히 쳐다보자 부담스럽다는 듯, 동급생은 서둘러 양호 선생의 책상에 놓여진 거울을 내밀었다. 거울 속 비춰지는 은발의 곱슬머리는 분명 천연곱슬의 제 머리가 맞는데, 어째서 얼굴은 완전히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순간부터 표정이 이렇게까지 험악해졌는지 긴토키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완벽히 만들어낸 미소를 제외하고 카구라는 저를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카타... 너 울어...?”
“...”
“선생님께 말씀드릴께. ...진정되면 올라와.”
많이 힘들었나보네... 동급생의 흘러가는 말이 긴토키에게 콱 박혔다. 힘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착각을 하는 것도, 그리고 그 착각에 빠져 가라앉는 저도.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힘들었다. 진실을 알고도 착각에 빠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눈을 뜨면 제 곁에 없을 카구라라는 현실에 더욱 힘을 뺐더니 어느 순간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로 빠진 것이었다. 과정이 힘들었다는 것은 끝에 와서야 알아차린 것이었다. 긴토키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힘들었다는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면서 생각했다.
“비참하네...”
허탈하게 웃으면서 제 심경을 말하자 애써 부정했던 진실이 사실이 되면서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빈틈이 없는 완벽한 한 쌍에 비집고 들어가려는 자신이 비참했다. 선을 넘지 않는 선배에 마음을 졸이는 후배의 비참함도, 선배에게 빼앗긴 동급생의 의미 없는 심술의 비참함도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끝을 생각하지 않고 달렸기에 생각보다 더 암울하게 다가온 끝에 감정이 더욱 격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눈가를 훔쳤다. 긴토키는 비참함을 잔뜩 느끼면서도 손끝의 열기를 되새겼다. 비참함의 무게가 더해질지, 덜어질지는 아직 모르는 선택이지만 멈추지 않기로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긴토키는 한번 제 주위를 멤돌았던 후배의 애정을 놓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자 비참함이 조금, 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