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카구] 축제가 끝났다
와... 글 너무 오랜만이다... 진짜... 너무... 오랜만이야...
다들 오키카구 열심히 파고 계시죠? 저도 여전히 파고 있습니다... 힘내서 지구 멸망할때까지 같이 파자고. 오케이?
남자친구편에 나온 친구와 연인간의 경계가 옅고 아직까진 해결사가 좋은 카구라쨩이 보고싶었어요. 좋아서 사귄 남자를 감당 못한다면? 카구라의 연애는 한없이 가벼운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은 소꿉장난에 불과한다면?
아이 행복해
전 이거 올리고 오랜만에 오키카구 서치하러 가겠습니다
“긴쨩! 긴쨩긴쨩긴쨔아아앙!!!”
“아오, 카구라!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했잖아!”
“긴쨩긴쨩, 나 급하다, 해! 빨리빨리이~ 어? 빨리이~!”
발을 동동 구르며 제 키보다 한참 더 큰 긴토키를 올려다보며 발을 한시도 가만히 못 있고 동동 구르던 카구라를 겨우 붙잡은 긴토키는 초저녁부터 제 집을 당연하다는 듯이 들이닥친 카구라가 피곤할 뿐이었다.
“이 아가씨야, 뭐가 급한데.”
“유카타! 빨리 유카타 입고 축제 가야한다, 해! 유카타 어디에 있냐, 해? 여기? 여기이? 앗, 즈라 좋은 저녁이다, 해!”
앗 하는 사이 긴토키의 품에서 쏙 빠져나와 신발을 던지고 다급하게 집 안으로 우다다 달려간 카구라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문을 벌컥 열어재꼈다. 바닥에 편하게 드러누운 이 집의 두 번째 주인, 카츠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을 땡그랗게 뜬 채 자신을 순진한 눈망울로 내려다보는 카구라의 시선에 점점 몸을 삐거덕거리며 움찔거리지만 차마 팬티 안에 깊숙이 찔러넣은 제 손을 빼지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붉히던 카츠라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리, 리더! 왜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오!!!”
“이, 이 아가씨가 진짜! 저 바보가 팬티 안에 손 넣고 벅벅 긁는 걸 왜 보냐고! 그리고, 유카타 여기 없거든?”
“그런건 빨리빨리 얘기하란 말이다, 해! 나 진짜 늦었다, 해!”
발을 쿵쿵거리며 긴토키의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재잘거리는 카구라 덕분에 긴토키는 알고 싶지도 않은 옆집 소녀의 여름 축제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의 약속에 늦었다는 것부터 축제의 모든 노점상을 정복할 것이라는 당찬 포부까지. 이미 늙을대로 늙은 긴토키에게는 너무 까마득한 과거의 열정이었다. 불꽃놀이나 겨우 챙겨보는 나이가 되자 긴토키는 카구라의 이런 밑도끝도 없는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기를 쭉 빨렸다.
“누가보면 유카타 내게 맡겨놓은 줄 알겠다. 근데 너 유카타를 왜 우리 집에서 찾냐?”
“카무이!! 카무이 그 자식이 내 유카타를 버렸다, 해!!”
죽이겠다는 듯 양손을 말아쥔 채 앞으로 슉슉 뻗는 카구라에게 어설픈 권투선수의 폼이 보였다. 살기 등등한 몸짓과 표정이었지만 힘이 무식하게 쎈 남매의 일상 중 하나이기에 긴토키는 무감각하게 넘겼다.
“어어, 그래. 아, 여기있다. 이 노란색 유카타 어때?”
“너무 애기같다, 해. 이 촌스러운 꽃무늬는 뭐냐, 해?”
“이거 나름 비싼건데...”
“나는 이 흰색 유카타가 좋다, 해.”
“혼자서 입을 수 있겠어?”
“아니. 입혀줘라, 해.”
“...너... 방금 애기 취급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아~~ 빨리!!!!”
“귀청 떨어지겠다. 알겠어, 문 닫고 와.”
“응!!”
젊음이란 좋은 것이지~ 80 먹은 노인같은 생각을 하면서 긴토키는 여전히 흥분에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카구라에게 겨우겨우 유카타를 입혔다. 마무리를 끝내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카구라가 나가고 앓는 소리를 내며 뒤따라 나온 긴토키는 게다에 발가락을 밀어넣으며 팔을 붕붕 흔드는 카구라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카츠라 어깨 위로 팔을 올리며 보란 듯이 앓는 소리를 과장되게 만들었다.
“다 죽어가는군, 긴토키.”
“어. 다음부턴 너가 나가라.”
“그게 리더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
“상대하는 걸 너가 하라고. 죽겠다, 아주. 쟤 학교에서 날아다니던 카구라 맞냐?”
“뭐, 리더의 용맹스러운 모습은 아주 멋졌지... 아무튼, 청춘이잖아.”
“그래. 나이 서른 먹고 열여섯 꼬맹이에게 꼬박꼬박 리더라고 부르는 너보단 정상이다.”
“...왜 나를 걸고 넘어가는 것인데?!!”
다각다각, 게다가 들려주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절로 흥얼거림을 멈출 수 없는 카구라는 자신이 소요와 약속에 한참 늦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분명 긴토키네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허겁지겁 달렸지만, 신호등과 저 멀리 보이는 축제의 불빛과 희미하게 들리는 축제의 소리가 카구라를 흥분시켰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축제는 지각을 했다는 중대한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요쨩? 왜 없지, 해?”
헉, 사색이 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잔뜩 찍힌 핸드폰이 알려주는 시간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요는 카구라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버리고 축제를 즐기러 갈 나쁜 친구는 아니었다. 그제서야 카구라는 긴토키 집에서 왜 잽을 날렸는지, 왜 카무이가 소요와 커플로 맞춘 제 연보라색 유카타를 보란 듯이 버렸는지 기억해냈다. 애초에 카무이의 목적은 소요였던 것이었다.
“아-!! 바보!!!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다니!!!”
절규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 카구라는 발을 동동 구르다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몸을 빳빳이 세웠다. 감히 소요쨩과의 축제를 망쳐?
“나라고 못 망칠 일 없지.”
샛길로 빠진 채 빽빽하게 밀집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비장한 얼굴로 잠시 응시하던 카구라가 성큼 걸음을 옮겼다. 매년 축제에 참여하지만 언제나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는 일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힘들지 않을것이라고, 카구라는 확신했다. 제 친구를 꼬시겠다고 동생을 골탕먹이는 골 때리는 오라버니에게 커다란 빅 엿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이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 맞았다. 카구라는 정확히 3초만에 후회했다. 소요에게는 미안하다고, 저 없이 축제를 즐겨달라는 문자 하나만 보내고 인적이 드문 주변을 거닐다 불꽃놀이를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가도 될 일이었다. 소요는 카구라를 많이 아끼지만 카구라가 없다고 축제를 즐기지 않을 성격도 아니었다. 빌어먹을 자존심. 작은 키에 더욱 숨막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한 채 손만 겨우 뻗은 자세로 인파를 벗어나려는 카구라의 어깨를 차가운 손이 강하게 붙잡고 잡아당겼다. 그대로 낯선 이의 품에 들어온 카구라는 방금 전의 답답함이 있던 자리에 들어오는 후덥지근하지만 불쾌하지 않는 한여름 밤의 공기를 훅 들여마시며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도에스?”
“여, 차이나. 너같이 키 작은 꼬맹이는 목마에 탑승해야 겨우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용기가 가상하다?”
“누가 누구더러 꼬맹이라는 거냐, 해! 너도 우리반에서 키 순서대로면 남자 중에서 제일 작으면서!”
“아니거든? 1.5cm 차이로 사토시보다 크거든?”
“헹, 있으나마나한 차이잖아, 해.”
“이게, 구해줬더니...”
“그래서, 목마 태워줄거냐, 해?”
“뭐? 아니.”
“그럼 왜? 왜 불러세운 것이냐, 해?”
“...매일 같이 다니던 도쿠가와는 어디갔고.”
“아, 소요쨩? 소요쨩 찾는거다, 해.”
“그럼 혼자야? 같이 가자.”
“엥? 너 친구는?”
이 소란스러운 축제 속에서 침묵이라는 단어를 쓸 줄은 몰랐는지, 카구라의 눈동자가 적잖게 커졌다. 입까지 헤 벌리면서 오키타를 쳐다보는 카구라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싫었는지 카구라의 얼굴을 밀어내면서 고개를 훽 돌려버린 오키타가 작게 웅얼거렸다. 그 작은 울림을 듣겠다고 밀어내는 오키타의 손을 내치고 몸을 바싹 붙이자 오키타는 앓는 소리를 내며 카구라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냈다. 그리고는 여전히 필요 이상으로 붙어 있는 카구라의 손을 덥썩 붙잡고 성큼성큼 인파를 헤집고 나갔다.
“뭔데! 야, 도에스!”
“시끄러워. 같이 어울려주겠다고. 어차피 넌 혼자서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나갈 것이고 나는, 사, 상대할 사람이 없으니까. 게임에서.”
삑사리가 났다. 그 오키타 소고가. 카구라의 놀람에 동그래진 눈이 반달로 휘어지며 경쾌한 웃음소리가 주변에 톡톡 튕겨진다. 그래, 카구라님이 어울려 줘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구라는 양 볼을 벌겋게 물들인 채 입 안 가득 뜨거운 타코야키를 우물거리며 싹쓸이에 성공한 경품을 주렁주렁 매단 채 인적이 드문 길가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뿌듯한 감정으로 축제를 등졌다. 오키타는 생각 외로 꽤나 만족스러운 상대였다. 아슬아슬하게 저를 추월하면서도 멀어지지 않는 오키타의 게임 실력이라던지, 음식 노점마다 멈춰 서며 양손이 빌 때 까지 기다려주는 배려심이라던지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모습부터 의외의 모습까지 카구라는 여전히 머릿속에 울리는 축제 용 샷건의 발사음과 색색깔의 돌림판의 잔상을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기억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아직도 다 안먹었어?”
“오징어!”
“야야, 그거부터 다 먹고 먹어라. 난 배불러서 더 안들어가니까 걱정 말고.”
“킁킁, 이 달콤한 냄새는 뭐냐, 해?”
“어쩐지 오징어만 반긴다 했다. 초코바나나.”
“초코바나나! 사람 엄청 많지 않았냐, 해?”
“별로 없던데?”
“설마! 작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소요쨩이랑 다음을 기약했단 말이다, 해!”
“근데 너... 아직도 그 선글라스 끼고 있었냐?”
마지막 남은 타코야키를 입에 넣고 후다닥 쓰레기를 치우면서 오키타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카구라는 오키타의 양 손에서 오징어와 초코바나나를 빼앗다시피 가져다가 오징어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달짝지근한 버터와 고소한 땅콩의 적절한 조화와 노릇하게 구워진 오징어의 환상적인 조합에 카구라는 저절로 눈을 감았다.
“바로 이 맛... 뭐하는 거냐, 해.”
“시작한다.”
“뭐가... 앗!”
오징어의 음미가 끝나고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오키타의 얼굴 근접샷에 얼굴을 구기기도 전에 오키타의 고개가 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따라가자 카구라의 눈에서 오색불꽃이 터졌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밤하늘을 수놓은 알록달록한 불꽃의 향언에 카구라의 식탐마저 멈춰졌다. 두 눈을 가리던 까만 선글라스가 머리 뒤로 넘어가는 것도 모른 채 정신없이 불꽃을 구경하던 카구라는 마지막 불꽃이 밤하늘에 터지고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들려오는 축제의 요란한 소리에 겨우 시선을 내릴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옆으로 향한 시선이 그대로 굳었다.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하는 축제의 한가운데도 아닌, 불꽃놀이의 중간도 아닌 이 상황을 카구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변이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제 후반부에 접어든 축제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들릴새랴 목소리를 한껏 낮춘 오키타가 속삭였다.
“차이나, 나랑 사귀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으헉, 소, 소요쨩, 너무 격하다, 해...”
“어떻게 이런 얘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어! 그래서? 응??”
“뭐... 이런거다, 해.”
꺄아아악!!!!! 교실을 뒤흔드는 소요의 ‘솔’톤 비명과 함께 남녀의 손가락이 교차되어 깍지를 단단히 낀 손을 들어올린 카구라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오키타는 그런 소요의 비명을 더더욱 끌어올리려는 듯 흔들었고 소요의 옆에서 얼굴을 와그작 구기던 카무이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질색했다.
“웩, 꼴보기 싫어.”
“카무이 덕분이다, 해.”
“...뭐? 무슨...”
“그날 소요쨩을 낚아채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없었을 것이다, 해.”
“아, 제발. 그만해라, 어?”
“흐흐, 고맙다, 해.”
“아악!! 너, 어디가서 이딴 말 지껄이기만 해봐라... 죽인다?”
그러거나말거나, 대놓고 오키타의 어깨 위로 머리를 툭 올려놓은 카구라는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틈 하나 없이 단단히 마주잡은 두 손이 뜨겁고 만족스러웠다. 조금 있으면 수업이 시작되니 자리에서 빤히 쳐다보는 것도 안돼, 손을 잡는 것도 당연히 안돼, 하필이면 깐깐한 카츠라의 역사 시간이기에 한눈 파는 것도 안돼, 죄다 안되는 것 투성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힘을 주고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기억하고자 했다.
“점심 어떻게 할 거야?”
“난 두 번 먹어야 한다, 해.”
“푸하하! 그럼 도시락 먹고 매점 가면 되겠네?”
“음, 그러자, 해.”
사실은 도시락을 두 개 싸왔지만, 카무이에게 처리를 해 달라고 하면 되겠지, 생각으로 카구라는 오키타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너무나도 예쁘게 웃고 있는 오키타를 계속계속 보고싶다는 생각이 컸던 탓이었다.
“조용조용! 수업 시작했다! 자리로 돌아가!”
“조금 있다 보자.”
응, 이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카츠라의 날선 눈초리에 고개만 겨우 끄떡하고 후다닥 자리로 돌아간 카구라는 슬쩍 엉덩이를 뒤로 빼 책상에 몸을 바싹 낮추고 책을 세워 앞에서 카츠라가 줄 시선을 차단했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자신보다 한 줄 앞, 하지만 저 끝에 앉은 오키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살짝 구부정하게 턱을 괸 채 펜을 신나게 돌리고 있는 모습에 쿡쿡,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성실한 모범생은 아니지만 성적은 좋은 것이 역시 타고난 머리라고 카구라는 쉽게 인정했다. 이전 제 성적표를 뺏어가며 자신의 성적표를 도리어 주던 오키타와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이었다. 관계 하나에 카구라 안의 오키타 사전에 수정사항이 벌써부터 바쁘게 이루어졌다.
아, 하품한다. 오른쪽 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쩍 벌리면서 하품을 하는 오키타를 빤히 쳐다보던 카구라 역시 근질근질한 입을 참지 못하고 쩍,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또 좋다고 킥킥, 웃었다. 역시 사귀는 사이는 하는 행동이 같나 봐. 귓가를 속삭이는 오키타의 달콤한 고백이 들리는 것 같아 간질거리는 귓불을 만지려는 순간이었다.
“집중 안하지?”
“으아아악, 아팟아팟아파팟!!!”
“어딜 보고 있던거야?”
귀를 죽 잡아당기면서 수업 땡땡이를 결국 잡아낸 카츠라가 카구라의 시야에 맞춰 허리를 숙이고는 시선을 옮겼다. 키득거리는 반 아이들의 작은 웃음소리와 그새를 못참고 떠드는 작은 소란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지만 카구라를 향한 시선은 동일했다. 이목을 집중시킨 카츠라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펄떡이는 가슴을 서둘러 정리한 카구라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헤헤, 웃어보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벽 바라보면서 멍 때린거냐?”
“으헤헤... 뭐, 그런거다, 해.”
“집중해. 너희도! 1학년이라고 방심했다가 훅 간다?”
“아~ 잔소리~”
“잔소리라고 흘러듣지 말고!”
재미있는 소문의 시동이 싱겁게 꺼져버렸다.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카츠라의 끝없는 잔소리에 귀를 막는 둥, 책상을 탕탕 치는 둥, 차라리 수업을 하라는 둥 질색했지만 카츠라는 꿋꿋이 라떼는 말이다 스킬을 시전하면서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던 카구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키타를 향했다. 그리고는 몸을 살짝 비튼 채 자신을 바라보던 오키타와 시선이 딱 마주했다. 싱긋 눈웃음을 지은 오키타의 입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다른 누가 볼새랴 입 주변에 손으로 가림판을 만든 오키타의 벙긋거림이 끝나자마자 카구라의 얼굴에 팡팡 터지는 불꽃놀이 마냥 웃음꽃이 활짝 폈다.
‘내가 그렇게 좋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차이나, 가자.”
“엉? 어딜 가냐, 해?”
“집에 가야지. 어딜 가.”
“소요쨩이랑 갈건데?”
“뭐?”
얼굴이 구겨지지만 카구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떨어지지 않으려는 애교가 몸에 배인 카구라는 어디로 갔는지, 오키타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포효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여전히 카구라는 제 여자친구이고 여전히 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지난 주까지만 해도 귀가하려는 것을 멈춰 세우는 것 자체를 참지 않고 바로 잽을 날렸을 것이었다. 많이 발전했다, 오키타 소고! 오키타는 기죽지 않았다.
“나랑 안간다고?”
“카구라쨩, 오늘 같이 갈... 어머. 미안, 내가 방해했나보네.”
그래, 방해했다고. 완전 방해했다고. 오키타는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소요를 눈으로 쏘아보았다. 오키타는 카츠라 시간 때부터 집중하지 못하고 카구라와 방과 후 무엇을 할지 벌써 완벽한 계획을 세운 후였다. 나란히 걸으면서 바로 어제였던 축제의 여운을 즐기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서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쯤, 집에 다다를 때쯤, 손을 잡고 수줍게 말하면 완벽할 것이었다. 좋아해, 라고.
“아니? 아니 소요쨩. 아니다, 해.”
“아니...?”
아니 3안타다. 강조를 한번도 아닌 두 번, 세 번을 하면서 순진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카구라가 한없이 야속해졌다. 지금이라도 한 번 더 아니라고 해. 그래서 장난의 장난의 장난이었다고, 같이 가자고 장난스럽게 말해. 그러면 손 잡기는 더 생각해 볼게. 역시 손 잡기는 너무 빨랐던 것인거지? 오키타는 할 수 있다면 빌고 싶었다. 야속한 상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벌칙으로 마구 껴안고, 마구 입술을 부비면서 약올리고 싶다는 저자세의 자신이 낯설면서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먼저 고백한 것부터가 이 싸움의 패자를 자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일 보자, 도에스.”
“...먼저 갈게...”
“...”
소요의 미안하다는 고갯짓도, 대놓고 비웃는 카무이도 모두 오키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뻥 뚫린 가슴으로 슝슝 빠져나가 모든게 부질없다고 여겨질 뿐이었다. 결국 카구라는 떠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멀쩡한 표정도 짓지 못했고, 인사도 못했다. 바보처럼 멍하니 떠나는 카구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분명 집에 가면 잡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이불을 발로 뻥뻥 찰 것이 분명했다. 절박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오키타는 카구라를 쫓아가지 않았다. 두 번의 거절은 제아무리 오키타라도 버티기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츠바의 문자를 받았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미츠바의 문자에 편의점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오키타는 결국 돌아서며 돈이 없다는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돈이 없기는, 무슨. 카구라가 제일 비싼 통으로 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도 성에 차지 않아 이것저것 더 고르고 돈이 없다고 우울해 하지 않도록 용돈을 싹싹 긁어왔다. 한 손으로 문자를 치던 오키타의 반대편 손은 주머니에 깊게 찔린 채 엔화를 있는 힘껏 구기고 있었다.
카구라는 현재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양 옆으로 여자아이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가림막 아래 그늘에 있음에도 눈앞이 띵 해질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기 때문이었다. 귀는 아프고, 흙먼지에 기관지가 아프고, 불쾌지수가 끝없이 올라가고, 양 볼이 화끈거렸다. 옆에서 소요가 내어주는 얼음물이 카구라를 운동자 옆 스탠드에 엉덩이를 붙이게 만들었다. 애초에, 교실 창문으로도 충분히 잘 보이는 점심시간의 축구 경기였다. 하지만 급식을 다 먹고 한여름의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손장난을 하던 두 사람에게 축구 한 판 어떠냐는 제의가 들어왔고, 반 아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경기를 보러 와 달라는 오키타의 수줍은 제안을 거절하기엔 꽤 눈치 없기로 소문난 카구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거, 거절하면 싸운다.
“연애는 생각보다 귀찮다, 해.”
“응? 뭐라고? 오키타군 잘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아니다, 해...”
으, 먼지. 끝없이 올라오는 흙먼지에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며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카구라 주변은 고의적인 티를 팍팍 내며 소요를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지만 오키타는 정확하게 카구라를 향해서만 손을 흔들고 웃어보이며 심지어 휴식 시간마다 틈틈이 카구라에게 다가와 수분 보충을 하는 것은 노골적인 의도가 들어 있었다. 싫은 티 하나조차 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다시금 억누르면서 카구라는 지금도 자신을 향해 눈울 반달로 곱게 접으며 손을 크게 흔드는 오키타에게 맞대응으로 손을 흔들었다.
“유세야, 정말. 오키타군에게 우연찮게 인사 받는 것 가지고 기세등등하긴.”
“정말, 우연이라는 걸 모르는건가?”
우연 아닌데요. 유세도 안떨고 기세등등하지 않았는데요. 카구라는 웃음을 여전히 장착하고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 시끄러운 응원 소리 사이로 험담이 똑똑히 들리는 것도 어떤 의미로 대단했다. 이런 사소한 공격에 하나하나 대응했다가 지쳐 떨어지는 것은 자신일게 뻔했다. 그래, 인기스타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나름대로 내가 견뎌야 할 고충이지. 암. 소요의 표정 또한 굳어지는 걸 보니 악의가 가득한 고의적인 공격임이 더욱 명확해졌지만 카구라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정수리에 불이 붙기 전에 경기는 끝날 것이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천국을 맛볼 생각 하나로 카구라는 다시금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오키타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망할 놈의 체질, 정신 나가겠네.
“이번 시합이 끝나면 나, 오키타군에게 고백할거야.”
“뭐? 오키타군 사귀는 사람 없어?”
“있겠니~? 모두의 아이돌인걸!”
“근데 성격이 조금... 사납다고 해야 하나? 어렵지 않아?”
“내가 다 감당할 수 있는걸. 오키타군을 사랑하는걸!”
“정말? 진짜 다 감당할 수 있는거냐, 해?”
카구라쨩! 다급하게 카구라 곁으로 따라온 소요가 카구라를 말려보지만 아랑곳 않고 두 아이 앞에 섰다. 경기가 가려졌다면서 투덜거리는 두 아이에게 카구라의 상체가 숙여지면서 불쑥 가까워지자 움찔거리면서 서로 눈치를 보면서 답을 미루다 카구라가 물러날 기색이 없자 날카롭게 공격했다.
“당연한걸 왜 묻니? 그리고 너가 뭔데 이러는거야? 너 나 아니?”
“아니? 우리반도 아닌데 내가 굳이 알아야 하는거냐, 해?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다, 해. 좋아하면 싫은 것도 다 참고 견디는 거냐, 해?”
“이거... 그냥 바보에 연애고자잖아?”
“얘, 당연한 거 아니니? 원래 연애는 같이 배려하면서 포기하는거야.”
“모쏠인거 아니야?”
키득키득 웃는 두 아이를 앞에 두고도 카구라는 심각할 뿐이었다. 시합 종료 휘슬이 들리고, 경기를 뛰었던 아이들이 하나둘 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탠드에 있던 아이들 대부분의 목표였던 오키타도 움직였고, 카구라와 방금까지 대화하던 두 아이도 카구라를 두고 훌쩍 떠났다. 카구라는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소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신경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오키타에게 쏠려 있었다. 얼마 가지 못하고 카구라에게 다가가는 오키타를 허망하게 쳐다보는 두 아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카구라에게 집중했지만 그런 사소한 시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구라는 뜨겁게 타오르던 정수리와 양 볼이 차갑게 식어가자 숨을 멈추었다. 눈앞에 선 오키타는 시선이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스탠드 위에 올라선 카구라는 똑바로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봤어?”
“봤다, 해.”
“...끝?”
“덥고, 목이 칼칼하고, 귀가 멍멍하다, 해.”
“물 줄까? 교실 갈까? ...아니, 그게 끝?”
“...끝이다, 해.”
헙, 놀라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는 소요가 한 발자국 멀어진다. 카구라는 미동도 없이 오키타를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오키타는 카구라보다 키가 컸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카구라는 단 한번도 오키타에게서 먼저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손이 보였다. 땡볕 아래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운동한 오키타의 손은 더러웠다. 분명, 아까의 두 아이는 할 수만 있다면 저 손도 핥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더운데, 먼저 들어가겠다, 해.”
“뭐? 나는!”
“너 기다리는 사람 많다, 해. 그리고...”
입을 꾹 다문 카구라를 향해 짜증을 내는 오키타, 그리고 그런 오키타를 향해 똑같이 화를 내고 싶은 카구라의 사이에는 더 이상의 불꽃이 터지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뒤 돌아 성큼성큼 건물로 들어가는 카구라를 향해 오키타는 버럭 소리 질렀다.
“그리고! 뭔데! 차이나!”
카구라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카구라만이 아니었다. 말을 내지른 오키타도, 안절부절 못하는 소요도, 작은 소란이 일어난 운동장에 있던 모든 아이들도, 열려진 창문으로 관음하던 아이들도, 모두 알았다. 이거, 아무래도 이별이다.
“차이나, 대화해.”
“좋아. 하지만 길지 않을 것이다, 해.”
“뭐? 너... 아까부터 이상한 거 알아?”
“내가 뭘? 나는 언제나 같았다, 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잖아.”
“...아는데, 모르겠다, 해.”
“그게 무슨 소리야.”
방과 후, 모두가 가고 텅 빈 교실. 점심시간의 소란은 선생들의 입에도 올라갔다. 긴토키의 깐죽거림을 흘러들으면서 교무실에서 빈둥거리던 카구라는 결국 못참고 저를 데리러 온 오키타의 손에 이끌러 교실 한가운데에 섰다. 순정만화의 한 장면 아닌가, 싶지만 분위기는 사랑이 피어나는 고백장면이 아닌 터지기 일보 직전, 이별을 앞둔 아슬아슬하고도 냉랭한 분위기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키타의 절박함과 카구라의 냉랭함이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모르겠다, 해. 사귀는 것이 이런 것이냐, 해?”
“무슨 소리야.”
“아까, 사귀면 포기하는 배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해.”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그게 왜?”
“나는 못하겠다, 해.”
“...너가 뭘 포기했는데?”
하, 오키타의 자조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귄 지 이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두렵고 지기 싫어서 벌써부터 싫다, 못하겠다, 포기하겠다고 말을 하는 건지 오키타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둘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따로 등교를 하고, 쉬는 시간에 함께 하고, 수업을 열심히 듣고, 그리고 따로 하교를 한다. 사귀기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스킨쉽은 투닥거리면서 자연스럽게 했다. 조금 더 애정을 담고 스킨쉽 후 간질거리는 마음만 제외하고는 정말이지 다를 게 없는 관계였다. 불만이야 그러려니 했다. 오키타도, 카구라도 하루아침에 사귀는 사이라고 태도를 180도 바꿀 만한 철면피가 아니었다. 그저 천천히, 조금씩 바꾸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오키타를 툭, 하고 절벽에서 밀었다.
“아직은 없지만...”
“아직은 없지만, 이라고...”
“앞으로 할 자신이 없다, 해.”
“그래... 그랬구나...”
“그러니까, 내 말은...”
“내 사귀자와 너의 사귀자는 의미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래...”
“내 말은-”
“부탁인데, 그 말은 하지 말아줘.”
“...”
“다시 그때로, 축제 전의 관계로 돌아갈테니까. 너가 원한다면 그 이하의 관계로 돌아갈 거니까, 그러니까...”
“사디...”
“그 말은 하지 말아줘라, 제발.”
자존심 강하고 이기적이고 지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오키타의 얼굴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였다. 카구라는 입을 벌린 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노을이 옅게 지기 시작했다. 주황빛이 하늘 구석부터 물들여지기 시작했고 여름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훅 들어왔다. 열대야가 두 사람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카구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두 눈을 옆으로 돌린 오키타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코를 뭉개고 명치를 사이좋게 때리고서도 인사는 한 번도 빼먹지 않았던 두 사람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떠나질 않았다. 모든 것이 버거워 도망친 사람은 카구라였다.
피융하고 날아오르던 불꽃이 팡 하고 터지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꽃은 터지지 않았고, 축제의 화려한 불빛은 더 이상 아른거리지도 않았다. 두 사람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은 침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야구부가 내지르는 훈련의 함성에 떠밀리듯 카구라는 달렸다. 경적 소리, 뒤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벌써 놀러 나온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야속했다. 집 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카구라의 달리기가 종료되었다. 분명 눈을 뜨고 있지만 짙게 깔린 암흑 속에서 카구라는 작은 탄식과 함께 중얼거렸다.
축제가 끝났다.
“뭐? 늦는다고?”
‘응... 미안, 카구라쨩!’
“아~ 오랜만의 축제란 말이다, 해! 기대했는데!”
‘정말 미안! 먼저 보고 있을래?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
“늦는 만큼 문어꼬치 사줘야한다, 해? 전화기 계속 들고있을 것이다, 해!”
삐죽 입을 내밀었지만 카구라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5년 만이었다. 여름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도망치듯이 타지역으로 가서 축제가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날을 5번을 보내고 전날 홀린 듯 유카타를 꺼냈다. 이번에는 갈 것이냐며 신이 나 카구라의 머리를 만져주던 코우카와 즐거운 대화를 마치고 나서는 카구라는 두둑한 용돈을 보며 하나둘 축제를 더욱 즐기기 위한 먹거리를 떠올렸다. 소요의 지각은 벌써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인 축제에 발을 디딛는 순간 카구라의 표정은 사르르 녹을 수 밖에 없었다. 달콤하고 북적이는 노점들 앞에서 표정을 구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늦는다, 해.”
자신과 만나기 전까지 게임을 즐기지 말아달라는 소요의 부탁으로 먹거리만 잔뜩 사고 옆으로 빠진 카구라는 다 식어버린 타코야키를 우울하게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소요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문어꼬치를 몇 개 주문해야 할지 상상하는 것도 한두번이었다. 제일 마지막에 산 타코야키의 안이 차갑게 식을 정도로 잠잠한 핸드폰을 원망스럽게 쳐다본 카구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이었다. 마치 그날을 떠올리게 해 카구라의 입꼬리가 더욱 아래로 쳐졌다.
전날 유카타를 꺼낸 것으로 용기를 다 잃었는지 카구라는 결국 유카타를 다시 넣었지만 소요의 애걸복걸로 축제에 나섰다. 그날을 떠올릴 새도 없이 축제를 즐기자는 소요의 말에 홀라당 넘어간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카구라는 우울하게 다 식은 타코야키를 들었다, 다시 내려 놓았다. 떠올리다 못해 아예 그날로 돌아가 카구라의 미간에 더더욱 주름이 잡혔다.
여름축제의 들뜬 분위기와 묘하게 좁아진 거리감에 잠깐의 두근거림이라고 생각했기에 카구라는 오키타와 이별한 여름의 끝자락을 생각보다 멀쩡하게 보냈다. 물론 당일은 까무룩 기절할 때까지 심란한 마음을 놓지 못했지만, 다음 여름 축제가 오기 전까지 잘 지냈다. 애초에 오키타와 사귀는 것을 아는 것은 소요 뿐이었다. 반 아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의 며칠간의 행적으로 어렴풋이 알 뿐, 직접적으로 사귄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의도치 않은 짧은 비밀 연애였다. 카구라는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오키타에게 인사했고, 잠깐의 침묵과 망설임 끝에 인사를 받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다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앙숙이었지만 단 한번도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은 채 멀쩡하게 졸업을 맞이하고 각자의 갈 길을 갔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멍한 눈으로 여전히 우글거리는 군중들 사이로 길어진 머리카락, 넓어진 어깨, 예전보다 높아진 시선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변한 그에게 그대로인 그 붉은 눈동자에 오롯이 제 얼굴이 담기는 그 순간을, 카구라는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머릿속에, 피부에, 세포에 순간순간 프레임을 잘라 박아 넣었다. 모든 기억을 잃어도 이것만큼은 당연하게 기억해야 할 것처럼. 그 많은 군중들 속에서 2년간 소식이 끊긴 그 사람을 우연찮게 한 눈에 알아차리고 사로잡힐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는 탓에 무릎 위에 올려진 타코야키가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 눈을 깜빡이면 사라질까 두려워 부릅뜨고 숨 막히고 이리저리 치일 것이 분명했지만 행여나 놓칠새랴 허겁지겁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군중을 헤치며 나아가는 와중에도 저 멀리서도 보이는 붉은 눈동자에 담겨진 제 얼굴이 여전히 기쁨과 설렘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에도 과연 5년간 멀쩡했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