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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늉뉴님께서 주최하신 오키카구 커플소재 100제에 87. 가르쳐줄께 에 참여한 키로 입니다!
*주최자님 참여해주신 모든 존잘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학기에 가장 귀찮고 싫은 일이 무엇이냐 하면 오키타 소고는 단연컨데 동아리 홍보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 막 2학년이 되어 3학년들은 대거 은퇴하고 남은 부원이라고는 꼴랑 넷. 모두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치지만 동아리 홍보를 앞두고는 시들시들 의욕이 증발해버렸다. 그것도 그럴것이 동아리 홍보라 하면 동아리를 홍보할 포스터 제작, 틈틈히 복도에서 신입생을 붙잡고 홍보하기, 반을 돌면서 본격적으로 동아리 홍보하기 등등 귀찮고 기피하는 일만 있는 것이다. 작년 소고가 속한 천문학 동아리는 1-K반에만 들어가 부원을 뽑았다. 이번 신입생 홍보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상상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응? 동아리 홍보? 아… 우린 귀찮아서 뽑기해서 나온 반에만 들어가서 부원 모집했어. 그리고 그게 너희 반이었고.'
조언을 듣기는 커녕 알고싶지 않았던 진실만 듣고 나온 넷은 하염없이 2시간을 그냥 보냈다. 회의를 목적으로 모였건만, 이래서는 폐지될 것 같아 회장으로 승격된 콘도 이사오가 입을 열었다.
"에, 우리 동아리 홍보 어떻게 할까?"
"회장! 먼저 하자고 할 정도로 그렇게 의욕이 넘치다니. 혼자 다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어. 역시 회장이야.우리 회장한번 잘 뽑았어, 그치?"
눈을 부라리며 아니라고 하면 죽인다, 라고 뻐끔거리는 시무라 오타에에 나머지들은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아니, 오타에상! 그, 그게 아니고!"
"닥처. 하라면 하라고. 내 동아리를 쫄래쫄래 쫓아온 스토커 주제에 말이 많아. 책임을 지라고, 책임을!"
"오타에상, 이건 정말 무리에요…"
울먹이며 나머지들을 돌아보지만 여전히 콘도를 구제해 줄 영웅은 나오지 못했다.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는 힘없이 책상에 엎어지는 콘도를 불편하게 바라보던 히지카타 토시로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저기 시무라, 콘도상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리인것 같아."
"토시이~~~!!!"
"콘도상에게 맡기면 우리 동아리 폐지될꺼야. 한면이 몰아서 한다고 하자면 우리 셋중에 한명이 하자."
"히지카타상?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는 한다고 말 안했는데요?"
"어이, 오키타. 너 지금 내빼기하는 거냐? 해라."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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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어 설레임과 긴장, 그리고 환상으로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건 교문 앞의 커다랗고 예쁜 벚꽃나무만이 아니었다. 학창시절의 절정기이자 마지막이 될 고교생활의 시작은 본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된다. 복도 가득 메운 수십개의 동아리 홍보 담당자들로 복도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놀라 숨을 들이킬 세도 없이 우루루 달려와 한명씩 붙잡고 면접겸 홍보겸 아주 약간의 협박으로 입부서 종이를 들이내민다. 유리한 장소인 앞부분을 차지한 운동부에게 뒤쪽에서 항의의 외침과 쓸데없이 큰 목소리로 설명하는 운동부와 놀라 웅성이는 신입생들의 목소리는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귀찮은건 딱 질색인 소고는 뒤로 빠져 한산하고 초조해 하는 타동아리 회원들과 서 있었다. 손에 들린 두툼한 입부서를 보면서 과연 몇이나 올까를 계산해 보지만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망할 히지카타."
오타에의 협박과 콘도의 부탁으로 홍보 후보자로 올라갔지만 물론 이것저것 핑계대면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빼도박도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도박, 가위바위보에서 완벽하게 져 꼼짝없이 홍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히지카타 서랍에 넣어 버릴까? 오타에의 보복이 금방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하고 히지카타에게 떠넘기로 한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1층 복도에서 2학년 교실인 3층으로 올라갔다. 1층에 밀집되어있지만 튕겨나오거나 아예 2층을 노리고 이곳저곳에도 동아리 홍보원들이 있었다. 무시하고 복도 반대편의 계단을 이용하려 복도를 가르지르던 소고는 한 학생과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소고는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갔지만, 부딪힌 학생은 발이 굳은 듯 꼼짝없이 서 있었다.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코랄빛 머리가 햇빝에 반사되어 반짝여 많은 이의 이목을 끄는 학생은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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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동아리 홍보는 잘 했어?"
"말도 하지 말아요. 사람 너무 많고 힘들어서 어깨가 빠질 것 같아요."
"뭐? 그럼 안되지. 고생했어. 어깨 좀 주물러 줄까?"
"콘도상이 할 필요는 없어요. 어-이 히지카타아. 와서 어깨나 주물러라."
"웃기지마! 너 그날 홍보는 커녕 입부서도 한장도 안돌렸잖아! 등교하고 나서 내 책상속에 입부서가 들어있는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토시, 그럼 그날 나한테 와서 물어본게,"
"어. 나는 입부서는 모두가 돌리는 건 줄 알았지."
"뭐, 결과적으로 입부서도 꽤나 돌려서 신입생들 많이 낚았잖아요?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거죠."
"담당 너인데 내,가, 고생한 게 문제인거지!"
"왜이렇게 예민해요. 아침에 마요네즈 안 먹었었냐, 히지카타야. 그럼 이제 곧 죽겠네?"
"너야말로 오늘 나랑 끝장 보자. 이리와."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자리를 박치고 뛰쳐나간 두명의 뒤로 갈곳을 잃은 손이 안마 자세로 굳어진 채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콘도가 있었다. 축 쳐져 소고와 히지카타가 엉망으로 해 놓은 의자와 책상을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가 앉아있자, 곧 거친숨을 내쉬며 머리와 상의가 엉망이 된 채 나란히 들어온다.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둘에게 한 목소리가 말을 건다.
"저기!"
뒤에는 처음 보는 아이가 서 있었다. 빨간 명찰, 1학년이다. 1학년이 2학년 교실에는 무슨 일이지?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목이 집중되었다.
"반했습니다!"
이목이 집중된것만이 아니었다. 조금있다가 학교 전체에 퍼질 고백에 모두가 놀라 순간 반이 조용해졌다. 1학년이 2학년에게? 그것도 새학기 시작한지 며칠만에? 서로 모르는 것 같던데? 그보다, 저 셋 중에 누구에게 고백한거야? 침 넘어가는 소리도 없이 같은 공간의 아이들의 머릿속은 회전하기 바빴다. 세명 또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잠깐의 정적을 깨트린건 콘도의 멋쩍은 말투였다.
"어, 미안. 근데 나한테는 오타에상이 있어서."
"그쪽이 아니다, 해."
해? 순간 모두가 당황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으로 소고를 가리켰다. 순간 소고를 제외한 반 아이들의 머릿속에 연민과 놀라움이 들었다. 저 오키타 소고에게 고백을?
"뭐냐 너. 나 아냐?"
"벌써 잊은거냐, 해! 첫날 복도에서 마주쳤다, 해."
"...기억 안나."
"난 기억한다, 해. 그때 한눈에 반했다, 해."
"그래서?"
"사귀어 주세요."
눈한번 피하지 않고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은 채 직설적인 아이에게 한방 먹었는지 소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지만 곧 예의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난 너가 누군지도 모르고,"
"카구라, 1학년 z반이다, 해."
"...너한테 아무 매력을 느끼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말 도중에 끊는 사람은 취급 안해."
"윽, 말 끊은건 미안하다, 해."
"알면 됐어. 용건 끝?"
"아니, 그게,"
"수업 시작하는데, 안가도 되냐?"
할말이 더 있는지 입을 달싹이던 카구라는 곧 소고의 말이 가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머뭇거리다 반을 나갔다. 정신없이 폭풍이 몰아쳐 대다수가 정신을 못차렸고 이 일은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건만 다시 교실로 고개만 빠끔 내밀던 카구라가 외쳤다.
"다시 온다, 해!"
코랄빛 머리가 다시 없어지고 남은 교실은 새로운 사건에 쉽게 조용해지지 못하였다. 기나긴 고백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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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온다는 카구라의 말은 착실하게도 지켜졌다. 매 쉬는시간에는 오지 못하여도 이동수업이 있는 날에는 교과서와 짐을 가득 들고는 꼬박꼬박 출석을 찍었다. 그 외에도 조례, 종례, 점심시간에도 소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층도 다른 복도인데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마주쳤다. 그리고 첫 말을 잊지 말라는 듯이, 만날때마다 좋아한다를 말하곤 했다.
"선배!"
"난 너 선배 아니라고."
"그치만 딱히 부를 말이 없다, 해. 이름은 사귈 때 부를 것이고… 그럼 별명은 어떠냐, 해?"
"별명? 애칭같네. 소고, 너 이름으로 불리는 거 싫어하잖아. 좋네!"
"콘도상, 멋대로 정하지 말라고요. 그러면 성을 부르면 되잖아, 멍청한 후배."
"~~~!! 멍청이 아니다, 해! 선배도 후배라고 부르면서."
"말이나 똑바로 하고 와라."
잔뜩 심술이 나 입을 다문 카구라를 지나치는 소고의 팔을 덥썩 붙잡더니 준비물을 까먹어 다시 되돌아온 아이처럼 말을 건넨다.
"좋아한다, 해."
어머어머, 옆의 히지카타의 등을 팡팡치면서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는 콘도와 놀라 바로 반격을 못하는 소고를 바라보며 뿌듯하게 웃는 카구라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잡았던 팔을 놓고 곧바로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어이, 정신차려라."
"소고, 쟤 정말 진심인가보다! 보는 내가 더 떨려. 오타에씨한테도 해야겠어."
"콘도상, 그만둬요. 적어도 팔을 덥석 잡는것부터 없애고 다시 생각해 보세요."
"에?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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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울리면서 나른하면서도 귀찮은 말투인 긴파치의 목소리가 한창 소란스러운 쉬는시간의 복도와 교실에 울려퍼졌다.
"에- 2학년, 오키타 소고, 오키타 소고. 두번 말하게 하지 마라- 당장 와서 나 좀 보자-"
"뭡니까?"
"오, 잘왔어. 너네반에 과제 안낸 학생들이 꽤 있더라? 걔네 과제 좀 걷어오고 이거 다음시간에 쓸 자료. 가져가."
"끝입니까?"
"앙? 그럼 뭘 더 바란거야? 긴상은 남자에게 관심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어요~ 좀 가라."
드르륵, 서랍에서 커다란 딸기맛 사탕을 꺼내서 포장지를 벗기는 여유로운 긴파치의 모습을 보면서 소고는 사탕을 깨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재빠르게 주먹을 날려 긴파치의 입에 들어가기 전 부수려고 준비를 하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쨩! 국어 교과서가 없다, 해."
"카구라… 학교에서는 긴쨩이 아니라고 했지. 그리고 1학년 국어 교과서를 왜 2학년 담당인 나한테서 찾는건데."
"권력남용이란 이럴때 쓰는거다, 해. 긴쨩이 우리 국어담당한테 잘 좀 말해주거나 교과서 좀 구해다 줘라, 해."
"비슷한 말이지만 긴상은 그거 못하겠거든? 얼른 너도 가라."
"너도? 또 누가 있, 선배!"
"선배?"
일부러 소고쪽으로 걸음을 성큼 옮기는 카구라에 긴파치는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바라보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딸기향이 카구라에게서 나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온몸으로 딸기를 느꼈다. 좋아한다면서 바로 옆에 있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카구라에 소고는 순간 지금까지 카구라의 줄기차게 말해온 고백이 모두 연극이라고 느꼈다. 고개를 까딱이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사탕은 어느새 긴파치의 입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 아, 서,선배!"
뒤에서 외치는 카구라의 말을 흘리면서 소고는 서둘러 반으로 갔다. 할 일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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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
"너,"
"선배 못봤냐, 해?"
"다른사람은 되는데 소고는 안된다는 거냐."
"어이, 토시!"
"그리고 난 토시군. 화장실 갔다."
"칫, 이번에도 또 허탕이냐, 해."
혀를 차면서 중얼거리는 모습은 도무지 사랑에 빠진 여고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히지카타는 끊임없는 카구라의 고백을 가까이서 본 사람 중 하나여서 거짓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해는 못했다. 그 성격나쁜 녀석을 좋아한다고?
"너, 소고가 왜 좋냐?"
"한눈에 반했다, 해. 그리고 그냥 좋다, 해. 뭐라 표현을 꼭 해야 하나?"
"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게까지 공통사는 둘 사이에 없었다. 카구라는 오직 소고에게만 말을 걸었고 히지카타 역시 가끔씩 만나는 카구라와 친근하게 대화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목적이었던 소고가 없자 가려는 카구라에게 문득 평소에도 궁금해하던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너 고백도 되게 열렬히 하는데, 따라다니지는 않네?"
"긴쨩이 스토커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여자때문에 되게 힘들어한다, 해. 나는 선배가 나를 좋아하지만 행복하길 바라는 거지,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건 아니다, 해. 그런 방법은 싫어한다, 해."
말투와 어울리지 않게 똑부러지는 말에 히지카타는 문득 박수를 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도상이 본받아야 하겠는걸?
"이제 됐냐"
"어. 고맙다."
패기있게 나가려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지 힐끗힐끗 뒤를 자꾸만 돌아보는 모습에 히지카타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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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소이치로군."
"소고입니다. 지난번 방송은 어떻게 잘 하셨네요?"
"응? 방송은 출석부 보고 아무나 부르는 건데?"
한심하다는 듯이 얼굴을 구긴 소고의 머리를 들고 있는 파일철로 살짝 누르는 긴파치의 표정또한 소고 못지않고 복잡미묘했다. 저녁마다 듣는 '선배'를 향한 카구라의 짝사랑은 새학기 봄의 변덕인지 긴파치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침 소고랑 복도에서 마주쳐 말을 걸어보지만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 고교생이란. 한숨을 푹 쉰다.
"선, 어 긴쨩!"
"카구라?"
"긴쨩이 여긴 왠일냐, 해?"
"너야말로 여기 왜왔냐. 여기 2학년 층이거든요?"
"난 선배 보러 왔다, 해."
"서, 뭐?"
"어디가냐, 해?"
"반으로 간다. 너한테 일일이 보고해야하냐?"
"물어볼 수도 있지!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 선배."
"자, 잠시만! 일로 와봐."
카구라의 귓가에 대고 긴파치는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저 오키타 소고만은 아니길. 많고 많은 선배 중 '선배'가 오키타 소고만은 아니길.
"쟤야?"
"뭐라하는지 모르겠다, 해."
"아니, 저녁때마다 내내 얘기하는 그 '선배'!"
"긴쨩이 알 필요는 없다, 해!"
확 붉어진 얼굴로 귓가의 긴파치를 밀치고는 그대로 달려가버린다. 멍하니 밀쳐진 긴파치는 고장난 로봇처럼 소고를 바라보았다. 변함없는 소고의 표정에 머리가 살짝 맑아졌지만 여전히 두 눈은 갈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선배'가, 그 '선배'가 오키타 소고라니. 오키타 소고라니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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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라쨩, 맨날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거야?"
"선배 만나러 간다, 해."
"선배? 왜?"
"어…………"
점점 농익어 가는 카구라의 얼굴에 부스스 웃는다. 도쿠가와 소요는 새로 사귄 귀여운 친구가 틈만 나면 이리번쩍 저리번쩍 하길래 살짝 찔러봤는데, 상상 이상의 반응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말 못하겠으면 다음에 말해줘도 돼."
"미안, 소요쨩. 지금은 말하기 부끄럽다, 해."
"괜찮아. 아, 나 오늘은 동아리 활동 있어. 먼저 가."
"응, 내일 보자."
동아리 부실로 들어가 곧바로 책상에 엎어진다. 좋아하는 친구의 비밀도 궁금하고 그런 귀여운 반응이 나오는 상황과 관련된 사람이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고 또한 몰래 알아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궁금증을 참기 위해 차가운 책상에 머리를 마구 비볐다.
"어이 후배님. 더럽게 뭐하는 거야. 거기 콘도상이 자주 쓴다고."
"괜찮아요, 아까 소독했어요."
"저기? 왜 나를 병균 취급해?"
"그보다, 아까 그 아이 누구야? 엄청 귀엽던데?"
"이름이 분명…"
"카구라였지, 아마."
"카구라요?"
무기력하게 퍼져있던 소요는 머릿속을 온통 차지한 카구라의 이름이 선배들의 이름에서 나오자 급격하게 스태미너가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카구라쨩이, 누구, 왜, 뭘 한거지? 그 반응은, 선배들과 관련이 있는건가?
"시무라 선배. 아까 그 얘기 자세히 해 주세요!"
"어머. 음, 그러니까 2학년 다같이 오던 중에 엄청 귀엽게 당고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막 대화를 하는거야. 아마 콘도랑 히지카타는 아는 사이인 것 같아. 그러더니 소고한테 가정시간에 직접 구운 쿠키라면서 쿠키를 한아름 안기고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가더라. "
"그, 그거! 제 친구에요! 카구라쨩!"
"어머."
"카구라쨩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 반응은 오키타 선배를…"
"소요, 들어봐!"
콘도가 중심으로 카구라의 열혈 대시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소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이해가 가질 않아.
"근데, 그렇게까지 표현했는데, 오키타 선배는 왜 안받아 주는거에요?"
"아, 그건…"
신나게 말하던 콘도의 입이 순간 다물어지더니 머뭇거린다. 이걸 말해야 하나, 하는 눈치에 옆에서 느리게 서류를 정리하던 히지카타가 대신 말을 해 주었다.
"그 자식, 누나가 한명 있어."
"누나요?"
"토시, 그런 얘기를 소고도 없는데 하면 안되지 않나?"
"이런 얘기를 아무데서나 떠들만큼 멍청하고 눈치없는 후배는 아니에요. 걱정마요. 그리고 카구라 친구라니까 들어도 되죠."
"그렇긴…. 하나…?"
"어렸을때부터 누나바라기여서 다른 여자는 신경도 쓰지 않은 거야. 그래서 다른거에는 무서울정도로 눈치가 빠른데 여자 문제는 더럽게 눈치가 없어."
시무라는 예외지만, 하지 못할 말은 꿀떡 삼키고는 할 말 다한 히지카타는 끝이라는 신호로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각자 이제 진짜로 동아리를 시작하려 하지만, 소요 혼자서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 있었다. 곰곰히 생각하더니 급히 방을 나갔다. 꿈벅이면서 상황파악을 하려는 콘도 빼고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곧 소란스럽게 들어온 소요는 들고 있던 것을 책상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에헴! 잠시만요."
이제서야 모두가 할 일을 멈추고 소요를 돌아보았다. 이목을 집중시킨것을 확인한 소요는 은밀한 작전을 설명했다. 시작은 흥미롭게, 그리고 조용하게.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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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라는 축제에 가는 건 어떠냐는 소요의 질문에 가겠다고 답했다. 예쁘게 입고 나와! 라는 문자를 확인하고 그대로 거실로 내려와 긴파치에게 유카타를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축제는 무슨, 이라면서 투덜거리지만 곧 카구라가 제일 좋아하는 유카타를 꺼내 왔다. 나가려는 카구라에게 돈도 쥐어주면서 배웅했다.
짠순이 긴파치의 혁명이라면서 기분좋게 나온 카구라는 소요에게 문자했다.
-소요쨩, 어디야?*^^*
-시계탑 앞으로 와~
가벼운 발걸음은 먹거리와 다양한 놀이를 잔뜩 즐길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차 있었다. 검은 실루엣이 시계탑 아래에서 어른거렸다. 빨리 놀고 싶어, 뛰어간 카구라는 바로 앞에서 발이 꼬이고 말았다.
"으억!"
"조심."
팔을 붙잡아줘서 바닥과 찐한 인사는 피할 수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지만, 이미 닳을데로 매일같이 듣거나 상상했던 목소리에 뇌보다 먼저 반응한 입과 온신경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법, 업, 어, 서, 선배?"
"….뭐야, 너가 왜 여기에 있어?"
"나는 소요쨩을 만나러 왔다, 해. ...선배는?"
"히지카타랑 콘도상."
"그러냐, 해."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시계탑의 시계 윗부분에 작게 빛나는 가로등 하나가 있는 공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괜시리 유카타를 툭툭 치는 카구라와, 소매 부분을 만지작거리는 소고의 주변에 어색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소고의 핸드폰이 울리더니 곧이어 카구라의 문자 알림이 왔다.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하는 소고는 약속을 취소한다는 문자에 내일 꼭 히지카타를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목적이 사라진 소고는 자리를 뜰려 했지만 없어질 생각을 안하는 어색함에 망설이다 카구라를 내려보았다. 딱, 자신을 올려다 보는 카구라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새빨게지며 시선을 피하는 카구라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너 약속 있냐?"
"아니… 소요쨩이 갑자기 취소했다, 해."
"…."
"기, 긴쨩이라도 불러야 하나."
"아니."
"…?"
"나도 약속 취소되었거든. 그냥 둘이 가자."
긴파치의 번호를 누르러던 카구라의 손을 잡고는 말을 해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소고는 자신이 왜 이런말을 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할 말만 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색함에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앞으로 나아갔다. 세걸음 쯤 소고는 카구라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봤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새하얀 피부가 새빨게져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순간 멈칫했지만, 다시 카구라에게 다가가 몸을 숙여 카구라의 무릎 쪽 유카타를 털어 줬다.
"유카타는 뛰는데 특화된 옷이 아니니까,"
"…."
"뛰면 안돼. 조심하라고."
"...응."
"가자."
다시 몸을 일으킨 소고를 멍하니 바라보던 카구라는 이 순간,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에는 빛도 없는 어둠뿐인데도 환하게 빛나, 눈이 부셔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고의 손이 닿은 유카타가 홧홧거려 움직일 수 없었다. 소고의 모든 행동이 처음이었다. 먼저 무언가를 제시한 것, 먼저 다가와 접촉한것, 먼저 걱정해 주는것 모두 이제껏 카구라가 소고에게 해 오던 것이었다. 자신이 먼저 했다는 것을 잊은 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폭발하는 건 아닌지, 그 생각으로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야,"
"….아."
한숨을 푹 쉬는 소고의 짧은 순간에, 카구라는 심장이 덜컥, 멈추는것을 느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건가.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
"잡아."
한숨을 쉬었기에, 자신을 두고 가 버릴까 두려워하던 마음은 소고가 내민 팔로 인해 열심히 펌프질 하는 심장에 밀려 사라졌다. 어버버하다가는 진짜로 가 버릴 것 같아, 냉큼 잡았다.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온몸이 두근거리는 기분에 그 웃음마저 꿈만같고 기분좋아 그저 잡은 팔을 더욱 꽉 잡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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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어색함이 무색하게, 축제는 아주 재미있었고 둘은 신나게 즐겼다. 자꾸만 음식만 사먹는 카구라를 끌고 게임을 하는 소고, 승부를 받아들여 축제 속의 또다른 볼거리를 내준 둘의 게임 배틀 등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안내방송으로 정신을 차려 축제가 끝나간다는 것을 겨우 눈치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춤 공연과 더불어 불꽃놀이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즐거운 축제를 보내세요!"
게임을 위해 잠깐 놓았던 팔을 자연스럽게 게임을 끝내고도 잡아왔다. 세번째 게임이 끝나고, 자신이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꽤나 떨리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아 의식하고 말았다. 카구라는 망설이다 자신들의 게임이 끝나고 구경꾼들이 자신들도 참여하겠다고 몰려드는 바람에 소고를 놓쳤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사람많고 혼잡한 축제 속에서, 가는 곳마다 구경꾼을 만들어내는 그들이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다닌 이유를 알았다. 팔을, 잡고 있어서였다. 의식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생각이 그쪽으로 빠지고 표정관리가 안되고 있었다. 카구라는 지금 자신의 얼굴이 엄청 웃길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복잡해 지기 전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핸드폰을 열고 나서야, 소고의 번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같이 학교에서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기에 딱히 번호를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것이 이렇게까지 크게 올 줄은 몰랐다. 멍하니 이리저리 치이면서 핸드폰만 바라보던 카구라를 누군가 잡아 끌어당겼다.
"이, 이거 놔라, 해!"
"가만히 좀 있어봐."
시끄러운 인파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카구라는 알 수 있었다. 소고다.
"선배,"
"사람이 많아서 놓치기 쉽다니까. 왜 망설인거야. 그냥 잡아."
잡은 손을 그대로 자신의 팔 위에 같은 자리에 올려놓는다. 카구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게 슬로우 모션인 것 마냥 착각이 들었다. 넋을 놓고 있는 카구라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소고는 그대로 인파를 헤치고 나갔다.
멍하니 소고를 바라보면서, 카구라는 결심했다. 고백,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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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
"고맙다, 해."
사람이 없는 축제의 끝에 위치한 작은 벤치 하나에 둘은 사이좋게 나눠 앉았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도 꺼내먹고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카구라는 말을 걸었다. 고백, 고백하는 것이다.
"저기!"
"왜."
난, 선배를 좋아해요, 이 말이 이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카구라가 불렀을 뿐인데 눈을 맞춰주면서 기다리는 소고때문인지 더 입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근데 이 말 되게 익숙한데. 입이 일을 하지 않자 뇌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하던게 고백이잖아. 매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알아주지 않은 이 사람에게 분위기에 휩쓸려서 고백을 진지하게 생각해줄까? 애써 외면했던 진실에 울것 같아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의도치 않았지만, 울고싶은 마음을 별이 달래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예쁘다, 해…"
"예쁘지."
"응… 이렇게까지 별이 많은 건 완전 오랜만이다, 해."
"너 저 별자리가 뭔지 알아?"
"?모른다, 해."
"저건 거문고자리, 그 옆은 독수리자리야."
"와! 되게 잘 안다, 해."
"천문학 동아리니까."
"선배, 할 말 있다, 해."
"말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머릿속을 한번 정리하고, 다시한번 굳게 다짐하고는 입을 연다.
"처음 봤을때부터 지금까지, 저 하늘의 별들처럼 좋아하는 마음만을 빛내고 있었다, 해. 저 별들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해."
진심을 담아서, 한글자 한글자 꾹꾹 강조해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고백을 하는 카구라는 떨리는 손을 주먹쥐어 애써 침착하려 했다. 고백이라는 거, 세번은 못하겠어.
"저기 헤라클레스 옆에 볼(bowl)모양의 별자리 보이지? 네모를 반으로 떼어낸 듯한 모양."
"보, 보인다, 해."
"이게 내 대답이야."
"….????"
떨림이 어이없음에 멈췄다. 카구라는 뭔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소고를 가늘게 쳐다보자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카구라에게 손짓한다.
"이리와봐."
그냥 여기서 해도 되지 않나, 싶지만 냉큼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가르쳐줄께. 이건 말이지…"
*왕관 자리
: 여름 하늘의 별자리 중 가장 아름다운 별자리인 왕관자리의 주인공은 크레타 섬의 공주 아리아드네이다. 이 왕관은 그녀가 테세우스에게 버림받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그녀를 위로해준 술의 신 디오니수스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7개의 보석이 박힌 금관이다. 아리아드네가 늙어서 죽게 되었을때 디어니수스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이 금관을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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